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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하는 모성, 영화 <미씽>

기사입력 2016-12-14 10:27

▲영화 <미씽> 사진 (박미령 동년기자)
▲영화 <미씽> 사진 (박미령 동년기자)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를 보러 간 날은 가랑비가 내렸다. 철 늦은 낙엽이 가랑비에 젖어 을씨년스럽게 길 위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보러 가는 발걸음이 그리 흥겹지는 않았다. 영화관에 도착할 무렵 영화 제목이 ‘그리움’인지 ‘잃어버림’인지 궁금해졌다.

싱글맘 지선(엄지원)은 딸 다은을 몹시 예뻐하는 보모 한매(공효진)가 있어 참 다행이다. 한매는 코를 핥아줄 정도로 다은을 예뻐한다. 지선은 그런 그녀가 고마워 월급과 함께 선물도 전한다. 이렇게 가족 같던 한매가 어느 날 다은을 데리고 자취를 감춘다. 지선은 상상도 못 한 일에 의아해하며 다은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유괴와 그를 추적하는 스릴러의 문법을 따른다. 그러나 사이사이 보모 한매의 과거가 플래시백 되면서 여성에 관한 사회적 고찰이 전개된다. 이혼한 남편과 양육권 문제로 경찰에 제대로 신고도 못 하다 의심만 받게 된 지선은 홀로 한매의 옛 흔적을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죽어가는 딸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한매의 불행이 낱낱이 드러난다. 그녀는 조선족 여인으로 시골에 돈 받고 팔려와 씨받이가 되었으나 가족의 핍박으로 아픈 딸의 병원비를 위해 장기까지 팔았건만, 끝내 죽고 만 딸에 대한 복수로 다은을 유괴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총망라되어 등장한다. 워킹맘이 부딪히는 일과 양육의 병행 문제, 남편의 바람기로 이혼한 여성의 문제. 이주여성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과 사회적 문제들. 감독이 여성인 게 드디어 이해되었다.

여성감독의 의욕에 넘쳐 문제 과잉 속에 길을 잃을 위기에서 영화를 구제한 것은 두 여배우의 열연이었다. 공효진은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에만 최적화된 배우가 아니라는 듯 새로운 캐릭터 창조에 성공하였고 엄지원은 스릴러에 적합한 순발력으로 화면을 지배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뱃전에서 마주친 지선과 한매는 다은을 뺏고 뺏기는 관계가 된다. 지선은 자신이 대신 죽을 테니 다은이 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이 기막힌 장면에 관객들의 눈에서도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모두가 엄마이거나 자식이다.

<미씽>은 한매가 왜 다은을 데리고 사라졌을까를 묻는 미스터리로 시작해 지선과 한매의 교감을 그리는 드라마로 흐른다. 한매에 대한 궁금증이 안쓰러운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그에 대한 지선의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한매에 대한 공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기본 테마는 ‘모성’이지만, 그 모성이 영화 속에선 철저히 짓밟힌다. 한매는 사회적 보호가 미흡한 가운데 가족들에게 무자비하게 핍박당하고 결국 어린 딸의 죽음을 맞는 가련한 모성으로, 지선은 이혼하고 일에 치이며 자식을 보살피지 못하는 불행한 모성으로 그려진다.

이언희 감독은 어쩌면 저출산 대책으로 고심하는 우리 사회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떠들기는 하지만, 아직도 모성을 ‘잃고’, 모성애를 ‘그리워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영화관을 나서며 바닥에 들러붙은 낙엽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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