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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산 어느 날의 바디 랭귀지

기사입력 2016-12-06 14:57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사용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바디 랭귀지를 같은 의미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민 초기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에게조차 적응하는 과정에 있을 때다. 알고 있었던 정보와 현실의 차이는 엄청났다. 남들이 모두 해냈다고 필자에게도 쉬운 길이 될 수는 없다. 마치 여자들의 해산의 고통처럼 고통의 몫은 저마다 다르다.

생존하려고 선택한 세탁업을 위해 필요한 기능을 익히느라 언어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억할 수도 없다. 한국인 특유의 빠른 눈치와 주위 상황을 종합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짐작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필자가 한 옷수선에서 아주 쉽고 기초적인 작업인데도 실수를 했다. 그때만 해도 필자가 아직 기술이 부족해 작업이 깔끔하지 못했는데 아주 기본적인 것마저 소홀히 처리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맡은 일에 온 정성을 쏟았던 필자였기에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엉뚱한 실수였다. 손님은 실수의 증거품인 바지를 들고 왔다. 화가 나서 곧 폭발할 듯한 얼굴로 말도 없이 잘못된 옷을 필자 앞으로 들이밀었다. 필자는 순간 ‘이럴 수가… 이 쉬운 작업을!’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무안했다. 먼저 손님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면서 고쳐주겠다는 약속의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필자의 말도 안 되는 실수에 어이가 없어서 그만 피식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어색하거나 무안할 때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습관이 있다. 특히 필자가 그랬다. 아주 고약한 버릇이었다. 종종 그런 태도가 지나치다고 주위 사람들이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안할 때 싱거운 웃음을 흘리는 습관이 그날도 나와버린 것이다. 그러자 손님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너는 이게 장난으로 보이니? 나는 무척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인데?”라고 말했다. 평소 필자의 작은 실수에도 관대하게 대해줬던 손님이었다. 필자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정 표현에 정확한 미국인이 필자의 웃음을, 그 복잡한 바디 랭귀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어 많이 후회가 됐다.

그날 밤 필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거리며 고민해도 그 손님에게 내 입장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한국인의 바디 랭귀지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시도라도 해보자 하면서 종이와 펜을 들었다. 내 안에 저장된 영어 단어와 사전을 동원하고 대학 입시 때 머릿속에 암기해두었던 구문까지 사용했다. 끙끙거리며 작성한 필자의 첫 영문 편지였다. 문장이 문법적으로 맞았는지, 단어의 사용이 적절하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단지 손님이 영문 편지를 통해 필자를 이해했고, 그 뒤로 더 친밀해졌다. 옷을 정성껏 다시 고쳐 편지와 함께 전달함으로써 첫 시련을 극복한 필자는 더 이상은 그런 실수가 거듭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단속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설픈 문장의 편지보다는 손님이 받은 손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했다. 불필요한 걸음을 하면서 소모했을 자동차 가스비를 필자가 부담하거나 처음 받았던 수선료를 돌려줬어야 했다. 거래상의 실수인데 시장의 생리로 대처하지 못하고 감상적인 글을 써서 해결하려 했다니… 필자의 대응 방식이 세련되지 못하고 너무 촌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필자에게는 따뜻하고 정겨운 기억 속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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