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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시련이 가져다준 선물

기사입력 2016-11-29 16:15

▲혹독한 시련이 가져다준 선물(손웅익 동년기자)
▲혹독한 시련이 가져다준 선물(손웅익 동년기자)
58년 개띠인 필자는 사십대로 접어드는 해에 IMF를 당했다. 그때까지 잘나가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가 한순간에 파산 상태로 접어들었다. 가족과 빚만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직원들 월급은 고사하고 당장 끼니를 이어갈 생활비도 없는 상태에서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폭음을 하고 다녔다. 대인관계도 다 끊었다. 어느 순간 고혈압, 불면증, 공황장애, 폐쇄공포, 감각마비 등 여러 가지 심각한 증세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감각이 마비되어 음식을 먹을 수가 없고 잠을 못 자는 날도 이어졌다. 가상의 공포가 밀려오고 폐쇄공포증으로 지하철도 탈 수 없었다.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술과 담배를 놓지 못했다. 포기 상태의 생활이었다.

그렇게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정신적 안정을 취하면서 나빠졌던 몸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갔다. 그러나 일이 없어도 쉴 수가 없었다. 일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매일 출근했다. 사무실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지낸 날이 많았다. 필자의 사십대는 암흑의 터널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터널을 엉금엉금 기어 나와 보니 오십대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어느 정도 빚도 정리했고 다행히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문득문득 불면증과 공황장애 중세를 일으키곤 했다. 언제부턴가 100세 시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베이비부머는 앞으로 30~40년을 더 살아야 하고 운 나쁘면 100세를 넘길 수도 있는데 노후 자금이 준비되어 있느냐는 우울한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사회 전체를 우울 모드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문제제기만 하고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오십대가 되면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니 첨단세계에 너무 뒤떨어져 있었다. 필자는 이메일 사용법도 몰라 직원들이 대신 보내주고 받았고 강의교안도 직원들이 다 만들어줬다.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소위 컴맹 상태로 살아왔던 것이다. 일 외에는 취미생활도 없었고 가족과의 소통도 거의 없었다. 100세 시대를 위한 경제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비전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속 빈 강정처럼 허전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은 치유가 필요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다.

오랜 세월 놓고 있던 붓을 다시 들었다.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진다. 목공예도 배웠다. 몰입하는 시간은 일상을 잊게 한다.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은 미술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노래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업무나 강의준비 등에 필요한 컴퓨터도 마스터했다. 필요한 것은 배우고 잊고 있던 취미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무엇보다 사진을 가까이 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식물원이나 수목원, 고궁, 유적지 등을 찾아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사진으로 남겨두기 위해 여행도 자주 한다. 사십대의 혹독한 시련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필자는 아직도 일에 파묻혀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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