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이 아기를 낳아서 대신 60세 가량의 백발 노선생님(여자)께서 대신 맡았다. 그때가 4학년이었는데 아이들은 선생님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면서 학교 전체의 문제로 만들었다. 담임선생님이 워낙 빠릿빠릿하고 단호한 성격이었던지라 아이들은 노선생님을 할머니라고 생각했는지 시쳇말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정확하게 잘 지키던 규율들을 안 지키고 학생들이 똘똘 뭉쳐서 수업도 제대로 안 받았다. 모범반이 순식간에 빗나간 행동을 하는 문제반이 된 것이다.
대부부 형제가 함께 다니는 동네 학교라 어느 반에서 일이 생기면 삽시간에 온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모든 학부모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서로 걱정하며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학교에 가서 제발 잘 지도해달라거나, 아니면 다른 선생님으로 바꿔달라고 항의하는 부모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기만 하면 손을 잡고 걱정들을 했다. 온통 같은 말이었다. “도오나룬데스까네에~고도모다찌가젠젠오찌쯔까나꾸데다이헨데스네~(어쩌지요? 아이들이 침착성을 잃었어요. 큰일이네요)” 이 말은 온 동네 인사말이 되었다. 똑같은 말로 인사를 건네고는 그동안의 상황을 서로 아는 데까지 교환하고 마무리는 “아이들도 선생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해결되겠지요?”였다. 학교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마음으로 그냥 헤어지는 거였다. 어느 엄마 아빠도 학교를 마구 흔들어대는 일은 없었다. 조용히 해결되기를 기다리면서 자기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슨 일로 이렇게 된 건지, 오늘은 어떻게 보냈는지를 아이들 입장에서 들어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선생님께 해야 하는 행동을 일러주고 지키라고 타이르는 정도였다. 한 달여를 그렇게 지내자 차차 나아져갔다. 담임선생님이 다시 학교에 나왔지만 어른들의 생각과 권위로 아이들을 혼내는 일은 없었다. 노선생님이 그만둘 때는 학생들 전원이 진심으로 잘못한 점을 무릎 꿇고 빌고 용서를 받았다고 한다. 몇 명이 반의 분위기를 흐려놓으면서 동요를 일으켰던 일이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벌을 내리는 일 없이 서로 용서하는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요즘 신문에서 제자와 선생님 그리고 학부형들의 이해 안 되는 행동에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옛날 그 일이 생각나곤 한다. 그들은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라고 믿어주면 기다려줬다. 신뢰하는 마음이 상호 간에 존경심과 믿음을 키운다는 걸 체험했다. 업신여겼던 자기들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고, 그 답으로 용서를 해주는 너그러움을 주고받으면서 진정한 교육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 뒤로 어느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깨끗하게 끝난 일이었다. 그 뒤 내가 4년을 더 살았지만 이름을 거론하면서 잘못한 아이를 지적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