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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초등학교 전학 (4)

기사입력 2016-08-30 14:15

추워지기 시작했다. 일본 애들은 반바지 차림으로 다닌다. 며칠간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긴 바지를 입고 등교하더니 우리도 그냥 반바지를 입고 다니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무릎이 빨갛게 되면서 추워 보이는 게 안쓰러워서, 저 애들은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괜찮지만 너희들은 이제껏 긴바지였으니 그냥 그대로 다니면 안 되겠느냐 해도 아니란다. 바람의 아들은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면서...

그 날부터 둘이는 반바지 차람으로 씩씩하게 잘 다녔다. 이제는 말은 일사천리로 잘 했고 우리는 남이 들어서 별로 기분 안 좋은 말들은 한국말로 하는, 그렇게 구분해 가며 할 수 있는 실력이 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서 사용하는 말과 아이들 끼리 통하는 말에 능통해졌고, 나는 시장에 가서 사용되는 말들과 인사말 그리고 일반 어른들과 하는 말들에는 불편함이 없이 의사소통을 하며 즐겁게 지내게 되었다. 물론 전화도 이제는 무서운 물건이 아닌 영어는 영어로, 일어에는 일어로, 한국말에는 한국말로 구별해서 대답을 할 수 있는 벌벌 떨이 겁쟁이를 면하게 된 것이었다. 혼자 있는 정적을 깨고 사납게 울려대던 전화벨 소리가 그렇게도 겁나더니 언젠가 부터 여유롭게 웃음도 웃어가며 대화를 하게 된 그 기분은 시쳇말로 째지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모든 새로움에서 부딪혀 가야만 하는 시련은 지나면서 다시 생활화 되어가고, 그것들은 습관이 되어 적응의 길로 발전해 간다는 것을 모든 새로운 것들에서 익혀간다는 즐거움으로 하루하루가 우리에게는 기쁨이었고 그것이 결코 고통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처음 맞는 겨울은 한국보다는 춥지는 않았지만 습해서 조금은 다른 추위를 느껴야 했지만 모든 건 이겨낼 만한 것들이었다. 나와 같은 또래들의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건 행복한 거라고 무조건 생각을 바꿔가게 하며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긍정적이길 원해서 부정적인 일들은 거의 말을 꺼 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그저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은 무조건 ‘일본 놈!’이라고 말했고 고약한 얘기들만 해줬었다. 그 영향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있어서 일본에 가야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엄청 차별을 당할 까 우려되어 마음속으로 은근 걱정이 심했었는데 선생님들이 전연 차별대우를 안 했고, 아이들도 그날로 친구가 되어 주는 친절에 여러 가지 나쁜 개념들을 조금씩 지우고 버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그 유명한 왕따 문제에도 걸리지 않고 잘 순조로운 학교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나! 큰애는 잘못 인식한 단어 하나로 모든 게 다 잘 넘어가버렸고 작은 녀석은 어느 사건을 계기로 그러려고 벼르던 녀석들의 양 코를 죽여 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겠다.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모든 엄마들이 감동했고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더욱 더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런 저런 일들로 동네방네 ‘기므꾼쿄~다이(김군 형제)’는 정말로 멋지고, 운동도 잘하고, 인사성 바르고, 성적이 우등이라며 칭찬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전학생이 일본 우에하라초등학교의 유명학생이 되어갔다. 처음 전학해서 운동회가 있었는데 두 녀석은 각 학년 대표 릴레이 선수가 되는 바람에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눈길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었다. 두 형제의 긴 다리에 입은 반바지 차림이 너무나도 핸섬(한싸므)하다나? 정말 다리로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전체가 다리가 짧았으니까. 한국보다 눈도 안 왔고 춥지도 않아 정말 지내기가 좋은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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