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19)집으로 가는 길

기사입력 2016-08-23 15:56

▲잘못하면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기 힘든, 멕시코로 가는 표시판. (양복희 동년기자)
▲잘못하면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기 힘든, 멕시코로 가는 표시판. (양복희 동년기자)
드디어 꿈같은 비자를 받아냈다. 그것은 얻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눈물 나게 힘든 과정이었다. 일단 5년 동안은 한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은 과제로 남아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스릴이 넘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 끝내, 목적은 달성했지만 험난한 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함께한 일행들은 긴장이 풀리기는 했지만, 또 남의 나라에서 당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똘똘 뭉친 단체의 강력한 힘들은 그 어려운 상황을 하나 하 나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값비싼 미국 비자는 일단 손에 쥐었다. 험난한 과정을 겪어 온몸으로 어렵사리 얻어냈다. 그러나 또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는 길은 그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만 하는 것 같았다.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오전에 들어온 그 길은 검문검색이 매우 심하다고 했다. 이제 막 얻은 비자로는 그곳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9.11테러 이후, 멕시코인 들의 국경을 넘는 야밤 밀입국이 잠시 끊기기는 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계 검문소는 몇 군데에 더 심하게 걸쳐있고 아주 살벌하다고 했다. 멕시코 브로커와 변호사는 식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미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멕시코 브로커는 일단 자기가 잘 아는 산길로 가자고 했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매우 안전하다고 했다.

모두가 불안하기는 했지만 일행들은 잠자코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그 길은 산 넘어 산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삭막한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아무리 넘고 넘어 도 적막한 산들로만 가득하고, 오늘 안에 과연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눈앞이 캄캄해왔다. 멕시코 기사는 열심히 달려가더니 갑자기 차를 멈추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갑자기 무슨 연락을 받았는지, 그 길에는 요즈음에 산 도적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 사람들도 살기가 힘이 드니 산에 도적들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잘 못 걸리면 힘들게 얻은 비자는 물론이고 모든 것들은 다 빼앗기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난감한 일인가 싶었다. 도리가 없었다. 두어 시간 달려온 산길을 다시 돌아 내려와야만 했다.

아뿔싸! 차를 돌리다가 차바퀴가 진 흙에 빠졌다고 했다. 기가 막힌다. 모든 일행들은 차에서 다 내려 있는 힘을 다해 차를 밀었다. 가까스로 차를 돌려 다시 온 길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차가 꿀렁거린다. 자동차 바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별수 없이 시내로 나가 바퀴를 갈아야 했다.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잠시 찻집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지저분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쾌쾌한 냄새와 끈적한 더위는 아주 역겹기만 했다.

어느덧 어둑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비자를 얻어, 날아갈 듯한 기쁨은 어느새 사라지고, 일행 모두는 서서히 파 김치가 되어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바퀴를 바꾸고 나서야 다시 차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오늘 안으로 집에 가려면, 다시 오전에 온 길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브로커는 여지 저기 연락을 취하며 안절부절 난리가 아니었다.

드디어 국경 가까이로 왔다. 일행들은 몸은 피곤해졌으나 불안한 마음을 조아리며 눈이 초롱 초롱 해진다. 창밖으로는 오토바이를 탄 검은색의 멕시코인들이 요란한 질주를 하며 길거리에 하나 가득하다. 모두가 집을 향해, 하루의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는 시간이었다. 검문소 앞에서 차가 멈추었다. 멕시코 브로커가 내려 한참 동안 힘든 수습을 하는 것 같았다.

웬일인가. 별문제 없이 통과를 시켜주는 것이다. 모두가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얼마를 또 달려갔다. 이번에는 미국의 검문소가 차를 멈추라고 했다. 변호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일행에게 안심을 시켰다. 변호사가 내려가 무어라 설명을 하며 패스포트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미국인이고 변호사라는 것이 효능이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한 백인 경관이 한 바퀴를 맥없이 돌고 나갔다.

그 후로, 아마도 한 군데는 더 검문소를 거친 것 같았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많은 검문소가 있어 검사가 철저했다. 미국인들은 멕시코에서 무작정 넘어오는 그들로 인해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사실상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 그중에 반수 이상이 불법체류자라고 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 어둠을 가르며 드디어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늦은 밤이었지만 당연히 마중을 나왔고, 필자와 남편은 끌어안고 깊은 포옹을 했다. 마치 몇 년 만에 만나는 것만 같았다. 누렇게 뜬 필자에게 남편은 수고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제야 가족을 만난 기쁨에 눈물이 핑 돌았다.

미국은 겪어야 할, 참으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잊지 못할 체험의 세계는 또 깊은 추억이 되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삶이 곧 힙합” 춤주머니 아저씨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땀으로 지병 없애고, 복근 남겼죠”
  • 패션부터 여행까지… 소비시장 주도하는 욜드족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커피 내리는 현장 남고자 승진도 마다했죠”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