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들었다. 올케였다.
“오빠가 중환자실에 계셔.”
오빠의 의식이 이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싸늘해지는 기분. 입원했다는 말도 없었는데 중환자실이라니?
사흘 전, 감기 기운이 있어 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고,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호흡이 힘들다고 했다. 응급실에 가자고 했더니, 늦었다고 해서 이튿날 종합병원에 갔단다. 종일 검사를 받고는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도 못 알아 볼 것이고, 보면 울 것이고, 환자의 안정을 위해 이제야 연락했다는 올케의 설명은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올케는 강인한 여자다. 오빠가 미국에 있을 때도 아들 셋을 키웠고 집안의 맏며느리로 든든한 역할을 해 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천천히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지만, 섭섭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에 서둘러 달려가지는 않았다.
다음 날 면회시간에 맞추어 오빠에게 갔다. 의식은 돌아왔으나 말은 못하고 온 몸에 이상한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침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단 채 반가운 표정으로 웃었다. 올케는 절대 울지 말라고 중환자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주의를 주었다. 안도하면서도 긴장되었다. 오빠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오빠는 연필과 메모지를 달라는 손짓을 했다. 필담이 시작되었다.
“내가 깨어나 연필을 달라는데 손잡아 달라는 줄 알고 손만 잡으니 답답해 혼났어. 그동안 꿈인지 생시인지 이상한 체험을 했다.”
그 기억이 생생한 듯 잠시 손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했다.
“의사가 오더니 내가 임종했다고 말했어. 살아있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식구들도 못 알아듣고 손짓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더라. 저희끼리만 얘기하는데 참 야속했어.” 오빠는 그 절실하고 답답했던 순간을 떠 올렸다.
“사람들이 침대를 끌고 춥고 컴컴한 방으로 가더니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어. 바닥이 얼음장 같아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실 같았어. 이렇게 죽는구나!”
그러더니 빠르게 다음 문장을 써내려갔다.
“깨어나 식구들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더라.”
젖은 수건으로 오빠의 얼굴을 닦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세듯 닦았다. 오빠의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이. 오빠는 손을 잡고 놓을 생각을 안 했다. 아기가 출생할 때 죽을힘을 다해 산도를 통과하듯, 죽음의 길에서도, 그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는 것이리라. 오빠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주렁주렁 매단 줄을 소품삼아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웃겨 주려고. 오빠는 과묵한 사람이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과도 눈만 껌벅이다 헤어진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었다. 음악과 사진, 동영상도 보내면서 얘기도 잘 걸어온다.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오빠가 드디어 변한 것이다. 가끔 죽음을 떠올린다면, 오늘의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달라진 오빠를 보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