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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영어가 뭐길래

기사입력 2016-08-09 14:54

▲필자가 아직도 끼고 있는 영어 책. (양복희 동년기자
▲필자가 아직도 끼고 있는 영어 책. (양복희 동년기자
영어는 전 세계 공용어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려면 당연히 영어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작 영어를 한마디 못해도 살수 있는 곳, 그곳은 LA 코리아타운이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시간 동안 영어라는 것에 마음고생을 하며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나 도대체 영어가 뭐길래, 그놈 앞에서만 서면 주눅이 들고 만다. 늘 마음속에서는 영어를 잘하고 싶은 꿈이 가득했건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 그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쩌면 필수적인 일이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씨름해오며 만인의 공통 과제인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놈의 영어는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소위 대학 강단에까지 섰던 사람이었지만 막상 미국인을 대하니 겁부터 났다. 물론 기본적인 영어야 가능했지만 세탁소에서 낯선 각 나라 손님을 맞이하는 일에는 선뜻 나설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 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용기를 내어 손님들과 눈인사를 시작으로 그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대강 눈치로 때려잡으면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는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애쓰기보다는 어느 정도 감을 잡으면, 먼저 기선을 잡아 할 말을 유도해나가기 시작했다. 말이 막힐 때에는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아직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면 그들도 이해를 했다.

필자는 오히려 되묻기를 했다. ‘혹시, 너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면 그들도 당황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NO'라고 대답한다. 차라리 당당한 마음으로 손님을 대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부터는 그럭저럭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손님이 일단 들어오면 큰소리로 반갑게 맞이하고, 'HI!' 하면서 손을 들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손님들은 아주 좋아한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세탁소 영어는 상황이 뻔하니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가끔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인들이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함께 대응해서 대화를 풀어주지 못하니 들어주는 척, 웃기만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적당히 함께하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으면 남편을 불러댔다. 필자보다 훨씬 실력이 나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편은 얘기하기를 좋아하니 신나게 달려온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3년이나 먼저 왔으니 당연한 일이라 위안을 삼았다.

언젠가, 그놈의 영어 때문에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던 일이 생각났다. 필자가 완전히 미국 이민으로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남편은 혼자 방 하나를 얻어서 살고 있었다. 집은 궁궐같이 넓고 방이 5개나 있는 큰집이었다. 혼자 사는 집주인은 외출을 했고, 방문으로 잠시 놀러 온 친척 할머니 한 분이 그 집을 지키고 계셨다. 넓고 커다란 거실에서 작은딸과 필자가 그 할머니와 이런저런 정겨운 한국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그 할머니는 그 전화를 받으셨다. 연세가 족히 80은 훨씬 넘어 보여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고 씩씩하게 전화기를 잡았다. 한동안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노바디!’하면서 전화를 꽝 끊으셨다. 필자는 멍하니 할머니를 쳐다보며 무슨 소린가 싶어 했다. 그 순간 할머니는 ‘아무 두 업는 디 전화질들이야!’라고 했다.

필자는 놀라서 또 물었다. ‘왜 그래요? 할머니, 누가 뭐라 구 해요?’ ‘몰러 내가 아남, 뭐로 구 지껄여대는지, 그래 없다 구 했지!’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웃어댔다. 잠시 후 작은딸과 필자는 갑자기 배꼽을 끌어안고 대굴대굴 굴렀다. 얼마나 웃었는지 배가 땅길 만큼 웃어대고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할머니의 여전히 당당한 모습에 또다시 한바탕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영어를 얼마나 쉽게, 단적으로 표현했는지 그 순발력에 기가 막혔다.

할머니는 미국에서 오래 사시다 보니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는 없었겠지만, 최소한의 의사소통하는 지혜는 갖고 계셨던 것이다. 밑도 끝도 없었지만 '노바디(NOBODY)'란 한마디로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고, 적어도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 연세에 순간적 대처능력이 엄청 세련되고 감각이 있어 보여 할머니가 매우 존경스럽게 보였다.

처음 미국에 가서는 전화받는 것도 대단히 신기하고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잘 들리지 않아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 당황하면서 주춤거리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끊어버리기가 일쑤다. 말을 못한다는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이민 가정마다 대체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통역관이 되곤 한다. 학생들이 영어를 제일 빨리 배우고 잘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영어 잘하는 아이들이 어쩌면 집안 대장이었다.

물론 내 나라말이 아니니, 대화의 소통만 되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20년 전, 그리고 지금도 그놈의 ‘영어가 뭐길래’ 언어 정복의 자존심은 여전히 영원한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전 세계 공용되는 영어가 뭔지, 그들도 한국어 때문에 고민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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