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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호미

기사입력 2016-08-08 15:40

밭농사 하려면 여자는 손에 호미를 놓아서는 안된다는 말을 한다. 농사라고 까지 말하기는 그렇지만 은퇴지가 촌이다보니 정원이다 텃밭이다 하여 밭농사 흉내는 내면서 사니까 정말 호미는 늘 지척에 두고 있다. 요즘처럼 더위가 극성일 때는 해뜨기 전 세 시간정도 정원과 집둘레의 잡풀을 제거해야하니 눈만 뜨면 호미를 잡아야 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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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는 작은 농구이니 비싸지도 않다 정원가꾸기 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데 비하면 정말 제 값 톡톡히 해 내는 물건이라 늘 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싼 값이라는 생각도 요즘들어 연거푸 세 자루 잃어버리고 나니 싸지도 않다,

처음 새 것일 때는 나무색 그대로인데 일손에도 흙이요 흙을 파고들고 긁고 누르는 작업을 하다보면 보호색의 벌레처럼 흙과 하나가 되어버린다. 일 마친 후에는 호미를 씻어 보관하여도 자루는 여전히 흙색이다. 호미가 풀이 무성한 땅에 누워 있으면 사람의 눈에 들어오기 힘들다. 일을 하다가 보면 웃자란 풀이 있고 웃자란 풀은 호미를 사용하는 것보다 손으로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더 깨끗한 작업이 되니까 호미를 옆에 두고 손작업을 하게 되는 데 한 번 호미를 내 손에서 놓았다가 다시 잡으려면 늘 허둥댄다. 내 앉은 자리 반경 1미터 둘레이니 보통은 찾게 되지만 금방은 잃어버리고 못 찾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 시간에 못 찾더라도 시간을 조금 지체한다든지 다음 날에는 찾게 된다. 그래서 호미는 잃어버림과 찾음의 반복을 되풀이 한다.

은퇴지를 농촌으로 결정하기 전에 먼저 제주도로 은퇴한 언니 집에서 한 달씩 머물곤 했는데 그 때 언니의 텃밭에서 밭일 예비수업을 했다. 언니와 함께 잡풀제거작업을 할 때 언니는 곧잘 호미를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었다 때로는 연이틀 사흘을 호미를 잃어버리곤했다.

그러다가 집에 호미가 없어 새 것 사야겠다 할 때면 잃어버린 호미를 계속해서 찾게 되어 호미도 수급을 잘 알아 조절해 준다싶어 고맙기도 했다.

필자는 잃어버리지 않는 호미를 언니는 잘 잃어버려 이상한일이다 했는데 작년부터 필자도 호미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처음 잃어버렸을 때는 일 하는 곳 주위에서 쉽게 찾아지곤 하여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잃어버리는 빈도도 잦고 찾아지지도 않기 시작한다. 연 사흘 내리로 세 자루의 호미를 잃어버리고 찾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일한 곳을 아니까 찾아봐야 할 장소가 마냥 넓지도 않다. 사방 4,5미터 안에 있어야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한 두 번이면 작은 실수라 하겠지만 연거푸 세 번씩이니 아찔한 생각이 든다.

문득 나는 잘 잃어버리지 않는데 언니는 잘 잃어버리곤 하든 그 때의 언니의 나이를 계산해본다 지금 나보다는 많이 젊었든 것 같다. 작은 건망증, 실수에도 나이든 사람에게 흔하게 오는 치매의 증상이나 아닐까하는 두려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언니도 아직은 정신이 맑으니 그 걱정은 기우다.

이제는 여분의 호미가 없어 호미 대신 낫을 사용하니 불편하다.

유 씨 부인의 조침문이 생각난다. 지척에서 쉽게 구매 할 수 있는 호미도 내 손 때 묻으니 잃어버림이 섭섭한데 그 시절 구매하기도 어려웠고 작은 물건이 손에 착 들어와 완전히 하나의 개체로 움직이며 섬세한 작업을 한 바늘에 정감도 묻었으리라. 여리고 작은 것이 내강하여 휘돌며 춤추며 만든 작품이 아름답기도 했고 생업이었으니 애틋함이 글이 되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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