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먹고 다녔다. 먹는 양도 많았고 술자리 횟수도 잦았다. 술자리는 언제나 새벽이 가까워져야 끝이 났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서 잠시 눈 붙이고 출근하곤 했으니 늘 잠이 부족했다. 종일 숙취로 헤매다가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 또 술 생각이 나곤했다. 어디선가 걸려올 것 같은 술 전화를 기다리다가 급기야 참지 못하고 필자가 전화를 돌리곤 했다. 그렇게 술을 먹고 다녀도 지각은 안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늘 잠이 부족할 수밖에….
요즘엔 밤늦게까지 술도 거의 먹지 않는다. 아침에 좀 느긋하게 움직여도 되지만 해가 뜬 후 집을 나서는 것은 영 어색해서 요즘도 새벽에 출근한다. 대체로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못 잔다. 건축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지만 그 전날 술자리가 늦었거나 잠을 잘 못 잔 날 새벽에는 정말 힘든 경우가 있다. 이렇게 늘 잠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예민한 성격의 필자는 평소에 잠을 잘 못 잔다. 잠이 드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많다. 잠이 깊게 들지도 않는다. 자다가 몇 번씩 깬다. 젊어서는 잠 잘 시간이 없어서 못 잤지만 지금은 불면증 증상으로 잘 못 잔다.
이렇게 잠이 부족한 필자에겐 특별하게도 숙면을 취하는 환경이 딱 하나있다. 흔들리는 열차다. 물론 지하철도 해당된다. 지방 출장을 다닐 때는 꼭 열차를 이용한다. 열차를 타자마자 골아 떨어진다. 부산 출장을 갈 때는 잠을 제대로 잔다. 누군가 깨워서 일어났더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내리라고 한 적이 있다. 열차가 부산 역에 도착한 지 오래 지나 승객들은 전부 하차하고 필자 혼자 텅 빈 객차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출근길 지하철 소요시간이 40분 정도 되는데 자리에 앉으면 내려야 하는 역까지 푹 잔다. 다음 정차할 지하철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은 의외로 데시벨이 높다. 지하철 객차 안의 소음도 많다. 그런데 가는 동안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숙면 상태를 취한다. 더 희한한 일은 내려야 하는 역 이름이 나오는 방송은 꼭 들린다는 것이다. 수 년 동안 이렇게 지하철 숙면을 취하면서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경우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잠은 길게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숙면이 필요하다. 그래서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비슷한 시간에 출퇴근 하는 사람들 중에 필자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완전 꿀잠에 빠진 머리 희끗희끗한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