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흉보다 눈 맞아 버린 우리들~!
지난 7월 7일 걷기 모임 아름다운도보여행(이하 아도행)의 남산 밤 산행에서 송주희(宋周憘·59)씨와 이숙희(李淑姬.62)씨를 만났다. 아도행에서도 알아주는 단짝이라는데 아니나 다를까 빨간색 커플 워킹화를 신고 걷기 모임에 등장했다. 이 두 사람이 친구가 된 지도 어언 33년. 결혼하고 얼마 안 돼 같은 고향 출신의 주류 사업을 하던 남편들 소개로 처음 만났다가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박영희·신미숙(아름다운 도보 여행 회원)
송주희 그런데 정작 남편들은 지금 안 친해요.
이숙희 저희들만 이렇게 만납니다.
남편 친구의 부인으로 만난 사이라니. 솔직히 가깝고도 먼 사이 아닌가. 게다가 동종 업계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들인데 말이다. 대부분 일종의 정보 교환을 한다든가 혹은 남편을 대동하지 않고는 잘 만나지 않는 사이가 바로 남편 친구의 부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쩌다가 친해지셨나요?
송주희 사실 남편 흉보다가 친해졌어요.
폭탄선언 같은 대답에 놀랐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송주희 남편 흉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언니한테 얘기하면 남편 귀에 안 들어가더라고요. 비밀 보장이 되잖아요(웃음). 그러다 보니 만나면 편해지고 서로 친하게 된 거죠. 솔직히 말 잘못했다 남편이 알게 돼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옛날에는 신랑 친구들하고 어디가면 말 함부로 한다고 집에 오면 뭐라 그랬거든요.
이숙희 원래 신랑 와이프들은 다 가까이하기에는 먼 사이잖아.
송주희 그래, 여럿이 같이 모이면 입조심해야 하고 그래.
이숙희 집에 가서 신랑한테 한소리 듣잖아.
송주희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남편의 다른 친구 부인들 만나고 오면 제가 불만이 좀 쌓이고 그랬거든요. 다시는 모임에 안 간다고, 뭔가 안 맞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들이 한창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여행을 자주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집에도 서로 다니곤 했다. 송주희씨가 분당에 살고, 이숙희씨가 김천에 살 때는 중간쯤인 대전에서 만나 여행도 갔다. 사는 지역이 다를 때는 주로 전화로 소통하며 살았고 이숙희씨가 서울로 이사 오면서 더 자주 만나고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들이 더 가까워진 이유는 걷기 모임인 아도행에 함께 나가면서 부터다.
송주희 언니가 적극적으로 모임에 오라고 했어요. 일을 하다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였어요. 무료하게 있지 말고 오라고요.
이숙희 그 전에는 둘이 만나면 뭐 할 것이 별로 없었어요. 매번 만나 영화 보고 둘이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고 딱 그거였어요.
송주희 둘이 노래방 가서 미친 듯이 놀기도 하고(웃음).
이숙희 그랬는데 아도행 같이 다니면서 더 자주 만나게 됐어요. 같이 걷는 거도 좋고 여행도 같이 가고요. 취미가 비슷하니까 건강도 챙기고 그래서 관계가 더 좋아진 거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우리 같은 사이면 견제 이런 거 할 텐데 전혀 그런 거 없어요.
둘 이외에 다른 친구가 있다거나 같이 만나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 어떤 친구가 있는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단점 같은 것을 발견했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이들은 의아하단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숙희 우리 그런 거 못 느꼈어요.
송주희 단점을 알기 시작하면 틈새가 벌어져요. 사실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어요. 단점을 생각하게 되면 안 돼요. 단점이 보이면 사람이 싫어지게 되잖아요.
이숙희 경계 없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거 같아요.
송주희 그저 만나면 마음이 편해요.
남산 푸른 산속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두 사람. 송주희씨가 대뜸 “찢어진 청바지 한번 입어 볼까? 재작년에 꼭 한번 입어 보고 싶었는데”라고 말한다. 이숙희씨는 “어떻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냐, 부끄럽다”라 말하다가도 “우리 언제 그렇게 입고 한번 만날까?”하면서 송주희씨의 계획에 화답한다. 오래된 청바지가 몇 개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자며 웃는 비밀스런 친구의 뒷얘기. 무척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