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오페라 푸치니의 가극 <나비부인>은 일본 나가사키를 무대로 미국 해군 장교인 핀커튼과 일본 태생 나비부인과의 사랑을 주제로 한다. 현지처 정도로 생각하고 결혼에 응하는 핀커튼과 종교를 개종하면서까지 모든 것을 바쳐 한 남자를 사랑하는 조초상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다. 3막으로 구성된 내용은 이렇다.
<1막> 몰락한 귀족 가문의 여식이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게이샤가 된 조초상은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에 올인한다. 나가사키 언덕에 신혼집을 차리고 친구와 친지를 초대하여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등기가 끝날 무렵 숙부인 승려가 나타나 개종한 사실과 선조와 친척을 버린 것에 대해 꾸짖으며 모두가 퇴장하고 우울함에 빠진다. 핀커톤은 신부를 위로하며 노래를 불러주고 방으로 들어간다.
<2막>
3년 전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난 핀커톤을 조초상은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이미 핀커톤은 친구인 영사를 통해 ‘이미 자신은 결혼했으니 잊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차마 전달하지 못하는 영사. 항구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며 핀커톤이 탄 군함이 입항한 것을 알린다. 조초상은 밤 늦도록 그를 기다리고 있다.
<3막>
밤잠을 못 자고 기다린 조초상의 집으로 양산을 든 핀커톤의 부인 케이트와 핀커톤이 들어서고 조초상은 순간 자신의 아이를 빼앗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조초상의 꿈과 희망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조초상은 5분만 아들과 보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방에 들어간 조초상은 세 살배기 아들의 눈을 가린 채 병풍 뒤로 들어간다. “명예를 잃고 사는 것보다 명예롭게 죽는 편이 낫다.”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는 자결 한다. 외마디 소리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핀커톤이 뛰어들어가지만 이미 몸은 싸늘하게 변해 있다. 자신의 잘 못으로 한 여인이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자책하며 핀커튼은 ‘나비야, 나비야’를 흐느껴 부른다.
3막이 다 끝나고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몰락한 가문의 어려움 때문에 미군 장교인 한 남자와의 만남에 인생에 전부를 걸은 어린 나이의 순진한 조초상. 그리고 미국에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를 두고 처음부터 현지처 정도로만 생각하고 결혼에 응한 핀커톤. 결국, 명예로운 죽음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의 운명이 오늘날 많은 관객의 마음을 울리며 세계 3대 오페라로 이어져 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필자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면서 한국의 열녀 서양의 솔베이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춘향과 나비부인이 동양 여인의 사랑이야기라면 솔비이지의 노래는 서양의 사랑이야기다. 희곡 ‘페르퀸트’에 삽입된 노르웨이 음악가 그리그가 작곡한 노래이다. 솔베이지는 돈을 벌러 방랑의 길을 떠난 페르퀸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머리가 백발이 된다. 늙으막에 병든 몸을 이끌고 오두막집으로 돌아온 페르퀜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머리를 누인 채 영원히 잠드는 이야기다.
춘향전에서의 춘향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결국 낭군을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나비부인과 솔베이지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필자가 노르웨이를 여행할 때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고 그 속에 담긴 사연에 가슴이 아팠었다. 그 슬픈 마음을 나비부인에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백발이 되어 병들고 늙은 상태로 만났고 또 한 사람은 그렇게 다시 올 것을 기다리며 애태웠건만 이제는 남의 사람이 되어버린 아픔의 사랑이다.
동서양을 어우르는 이 여인들의 사랑이야기가 결과야 어찌 되었든 한 남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기다리는 공통점이 있다. 기다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은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