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변월룡 화가’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6년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났으며, 레닌그라드의 레핀 예술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화가가 된 고려인이다. 그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국경 밖에서 태어나, 이주의 땅에서, 소수자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자신의 디아스포라적인 실향민의 운명을,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승화시킨 화가다. 세상과 자기 내면을 향한 시선을, 화폭에 담은 흔적이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레핀 예술아카데미의 교수로 있을 때, 독·소 전쟁이 일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으로 정치 포스터를 많이 그렸다. 그런데 1953년, 그가 레핀 예술아카데미 부교수로 있을 때,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평양미술대학 학장과 고문을 역임했다. 15개월 정도 평양을 다녀온 것이다. 후에 다시 가려 했으나, 북한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겨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후로는, 변월룡은 소나무를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러시아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나무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흔한 나무다. 그의 소나무 그림을 보면, 반듯하고 곧게 뻗은 나무가 없고, 대부분 뒤틀리고, 심하게 구부러져있다. 화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언제나 조국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으로 소나무를 그렸다.
소나무를 그린 작품 중에서 ‘금강산 소나무’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 금강산을 배경으로, 홀로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를 그린 것인데, 이 작품의 특징은 다른 소나무들과는 달리, 모습이 뒤틀린 것이 아니라 나무가 곧게 뻗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내적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나무는 작가가 그의 삶을 마감하는 이생의 끝에서, 영혼이나마 조국으로 돌아가, 비로소 그의 고뇌를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은, 화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한 것은 아닐까?
변월룡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을 끝내 가보지 못한채, 1990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