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아름다운 얼굴"

기사입력 2016-06-27 10:04

▲작은딸이 크레용으로 그려낸 아빠의 얼굴. (양복희 동년기자)
▲작은딸이 크레용으로 그려낸 아빠의 얼굴. (양복희 동년기자)
한 학자는 미(美), 즉 아름다움이란 각성(覺醒)이고 그것은 앎이라고 했다. 아는 것은 곧 깨닫는 것이며 사람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 삶에 대하여 각성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이 최고의 예술적인 미라고 표현했다.

얼굴의 옛말은 얼 골이라고 한다. 얼 골은 얼 꼴에서 왔고 얼의 꼴, 이 말은 영혼의 모습이라고 했다. 누구나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 주는 곳이 얼굴이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저마다의 얼굴에는 있는 그대로 그 사람 삶의 얼이 배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 내면에 쌓여진 얼의 가치를 쉽게 잃어가며 무작정 저마다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때로는 인위적 시술도 서슴지 않고 거대한 물질적 투자와 함께 서서히 태생의 예술성을 지워버리고 만다.

삶의 예술성은 다양한 얼굴들이 그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삶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저마다의 인생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처음 세상을 맞이하며 거의 비슷한 얼굴로 두려움에 떨기로 생을 시작하고,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때로는 눈물바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웃음 넘치는 희극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 길을 따라 한편의 삶을 연극처럼 연출해 멋진 예술 작품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그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사연을 담고 저마다의 색채로 그려내는 얼굴들이기에 어쩌면 멋진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유심히 세상을 바라다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때로는 아무리 하찮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의 진실성과 예술성을 담고 있기에 그 성질들은 전혀 다른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작품 중에는 ‘홈리스(노숙자)’라는 작품이 있다. 그 또한 어쩌면 웃지 못할 비극적 삶의 일부라 하겠지만 하나의 훌륭한 개체로 탄생되어 존재되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회화 작품은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들을 액자 속에 잘 넣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또한 예술성의 본래의 개념은 사람들의 무심함을 돌아보며 깨우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아름다움은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술성은 곧 깨우침의 진리를 말해주는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한 유명한 학자는 예술의 쟝르 중에 부동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비극의 미”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비극에 하나같이 공감하는 이유는 비극을 통하여 인간이 세상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깨우침의 가장 통절한 통로가 비극화이며 그것은 사람들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자아내고 눈물 맺히게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희극적 사건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다. 물론 넘치는 기쁨의 감동이 눈물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비극의 감동처럼 온몸으로 저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비극은 모든 나라의 문화전통에서 극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예술의 비극성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이란 과연 어떤 얼굴을 말할까? 그것은 내면에 쌓여진 삶의 표정이 그대로 우러나오는 얼굴이다. 살아온 삶의 깊은 성찰과 함께 세상을 인식하며 깨달아 가는 모습, 그야말로 꾸며 내지 않고 위선이 없는 얼굴이다. 그것은 철학적으로 세상을 초월한 얼굴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을 하며 깊이 사색에 잠겨본다.

필자는 사람을 만날 때, 사람의 얼굴에서 흐르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가 없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의 동일한 눈, 코, 입, 귀보다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가치관이 달관되어 있는 얼굴이 참으로 아름답다. 제각각 살아온 숱한 삶 속에, 비록 일그러져 변해 버린 초라한 모습이나 진심으로 세상을 대면하는 참된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픔이 쌓이고 쌓여져 터득해버린 초탈(超脫)의 얼굴은 그 어떤 좋은 피부, 고운 피부, 하얀 피부보다 “아름다운 얼굴”이 되어 멋진 삶의 여유를 누릴 것만 같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삶이 곧 힙합” 춤주머니 아저씨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땀으로 지병 없애고, 복근 남겼죠”
  • 패션부터 여행까지… 소비시장 주도하는 욜드족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커피 내리는 현장 남고자 승진도 마다했죠”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