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면 먼 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 “뻐꾹 뻐꾹”하는 소리가 점점 가늘어질 때까지 부동자세로 그 소리를 가슴에 담는다. 뻐꾸기 소리는 그날의 슬픔을 다시 아프게 살아나게 하지만 유월이 지나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서 더 그립다.
30년 전 큰오빠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45일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6월 초였다. 영안실에서 밤을 새고 답답한 마음을 잠시 쉬고 싶어 새벽에 밖으로 나왔다. 유난히 안개가 짙게 끼어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뽀얀 안개 속에서 갑자기 뻐꾸기가 날아와 바로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마치 오빠가 뻐꾸기가 되어 나를 찾아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그 소리는 가슴을 파고들었다. 잠시 그렇게 울다 날아간 뻐꾸기는 흔적도 없었지만 내 가슴에 새겨놓은 그 슬픈 울음소리는 30년이란 시간을 넘어선 지금도 생생하다.
부모님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큰오빠의 자리는 우리 가족에게 무척 크게 느껴졌다. 장남이라는 무게가 부모님께는 더할 수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형제들이 느끼는 슬픔의 무게와 비교할 수 없었으리라. 자식을 잃으면 흔히 가슴에 묻는다고 했고, 참척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부모님을 침묵하게 했다.
그 후 6월이면 내가 살던 동네 뒷산으로 어김없이 뻐꾸기가 찾아왔다. 그 소리만 들리면 뭉클뭉클 눈물이 났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하던 일도 다 손을 놓고 안 들릴 때까지 듣곤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젖어 뻐꾸기와 오빠를 생각했었다. 슬픔을 되새기면서 한편으로는 위로를 주는 효과가 있었다.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를 그날의 뻐꾸기 소리로 치유하는 것 같다. 하지만 10년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한 후 뻐꾸기 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잊고 있다가도 6월이면 문득 뻐꾸기 소리가 듣고 싶었다.
작년 6월 초 파주에 있는 벽초지 수목원엘 갔었다. 이곳저곳 돌아보는데 갑자기 먼 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그 자리에서 발이 딱 붙어버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뻐꾸기 소리 나는 산을 향해 한참을 서서 들었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출렁거렸다. 눈물도 그렁그렁 모여들었다. 도저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뻐꾸기가 날아간 산은 하루가 다르게 짙은 초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먼 산등성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날의 슬픔을 다시 반추하고 있었다. 뻐꾸기 날아간 푸른 산을 눈에 담기 위해, 그 소리를 가슴에 담기 위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슬픔은 언제까지 슬픔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슬픔의 순간들은 가슴에서 녹아내려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오빠가 세상을 떠날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큰조카가 이제는 40대 후반이 되었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아가고 있다. 그 때의 혼란과 슬픔은 사그라졌지만 그 날에 울던 뻐꾸기 소리는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유월이면 슬픔이 승화된 그리운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