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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관계가 되고, 관계가 희망이 됩니다”

입력 2025-12-17 06:00

[가치동행일자리 우수사례자] 이명주 씨, 나이 듦을 잇는 따뜻한 연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운영하는 ‘가치동행일자리’는 중장년의 경험과 역량을 지역사회에 연결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 사업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커리어를 모색하는 중장년에게 경력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외로움돌봄동행단 이명주 씨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혼자 사는 어르신의 문을 두드리는 손길은 때때로 그분의 하루를, 나아가 삶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아주 작은 관심이 외로움과 고립의 문턱에서 사람을 붙잡는 힘이 되고, 그 관심이 이어져 관계가 되고, 그 관계가 다시 지역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전화를 주시니, 제가 너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요.”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이명주 씨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가치동행일자리’ 사업 중 하나인 ‘외로움돌봄동행단’ 활동을 하며 그는 수많은 어르신을 만났다. 안부 전화를 걸고, 직접 찾아가고,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눈빛으로 위로를 건넸다. 어느 날 통화 중 건넨 평범한 인사에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을 때, 그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낯선 현장에서 발견한 ‘돌봄의 본질’

이명주 씨는 2025년 봄, 외로움돌봄동행단 활동을 시작했다. 20대 때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다 결혼과 육아로 오랜 시간 경력이 단절됐다. 아이가 성인이 된 뒤에야 다시 자신의 길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그는 뒤늦게 사회복지사를 향해 발을 내딛으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그때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운영하는 ‘가치동행일자리’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일자리이면서 사회공헌,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품은 프로그램이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이론보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경험’이 중요하더라고요. 실습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현장의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죠. 자원봉사처럼 무급도 아니고, 활동비를 받으면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그가 배정받은 활동처는 주택관리공단 노원구 월계1동 주거복지상담실. 65세 이상 1인 가구 명단을 받아 안부 전화를 하고, 연결되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는 일이 그의 첫 업무였다. 처음엔 관리공단, 주민센터, 주거복지 분야가 이어지는 현장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전화가 안 되는 분이 많았어요. 선불폰을 쓰시다가 번호가 바뀌거나 연락이 끊긴 분이 많더라고요. 주택관리공단 월계1동 주거복지상담실에서 전달받은 기본 명단만으로는 복지 사각지대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그에게 방문 대상자의 문을 두드리며 이웃의 안부를 묻는 일은 단순 행정이 아니었다. 그는 “돌봄은 ‘확인’이 아니라 ‘관심의 연장선’”이라며 “이 일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돌봄의 깊이’를 가르쳐준 동료들

외로움돌봄동행단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월계1단지에는 50~60대 중장년 참여자 4명이 오전·오후로 나누어 활동하고, 언제나 두 명씩 짝을 이뤄 움직인다. 이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지켜주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봉사해온 동료 선생님에게 ‘돌봄의 깊이’를 배웠다고 말했다.

“어르신 한분 한분의 성향을 알고 계시더라고요. 누구는 한 번 더 전화를 해야 하고, 누구는 기다려야 한다는 걸 몸으로 아세요. 그걸 보면서 ‘아,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구나’라고 느꼈죠.”

어느 날 프로그램 참여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는데 어르신의 응답이 없자 이명주 씨는 ‘변심이겠지’ 싶어 넘기려 했다. 그런 그에게 동료는 “보호자 연락처가 있으니 한번 연락해보자”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고,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산책 중 낙상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그때 정말 놀랐어요. 돌봄의 깊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한 번 더 살피는 마음’이 누군가의 안전을 지킬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관심이 관계를, 관계는 희망을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이명주 씨가 만난 어르신은 대부분 말벗이 필요했다. 전화로는 형식적으로 답하다가도 얼굴을 마주하면 두세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도 서로 말을 안 섞잖아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고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는 신호를 드리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인지 저하가 의심되던 어르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화를 드리면 TV 소리만 들리고, 제 말은 못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바로 방문했죠.”

한여름인데도 해가 든다며 창문엔 검은 천이 덧대어 있었고 방 안은 칙칙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분이 전화로 딸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한순간 환하게 웃는 걸 보고, 돌봄의 시작은 ‘연결’이라는 걸 깨달았다.

외로움돌봄동행단의 의무는 단순한 돌봄 서비스나 위기 상황을 뒤늦게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립이 심각해지기 전 단계에서 개입해 예방하고, 끊어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잇는 것, 그것이 활동의 핵심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늦잖아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다가가야죠. ‘누군가 나를 잊지 않았구나’ 하는 그 감각을 되살려주는 것, 그리고 서로가 연결될 수 있는 작은 끈을 놓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복지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곳에서

그가 활동하는 동안 월계1단지에는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불 빨래 서비스, 체험형 프로그램인 ‘마음밭 일구기’, 휴양림 산책, 금연 프로그램, 결핵 검진 등 다양한 활동에 주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자발적으로 시작했다는 말이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해 웃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걸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지관이 아니라도 지역 안에서 누군가를 잇는 일처럼 ‘사람이 중심’인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현재 사회복지사 1급 취득을 준비하고 있는 이명주 씨는 “50대, 60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이 나이에만 가능한 일이 있어요. 인생을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결이 있거든요.”

그는 모든 중장년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누구나 떨리죠. 하지만 중장년의 경험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자산이에요. 저도 경력 단절이 20년 넘었지만, 지금의 저를 필요로 하는 현장이 있잖아요. 여러분에게도 꼭 그런 곳이 있을 거예요.”

그는 외로움돌봄동행단 활동을 ‘선순환의 가치’라고 정의하며 내가 주는 위로가 나를 치유하고, 그 배움이 또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 그 따뜻한 순환이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연결한다”고 이야기 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가치동행일자리는 이런 사람들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그들이 건네는 작은 관심이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고, 또 다른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

수화기 너머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그 인사는 단순한 안부가 아니다. 외로움 너머로 건네는 사람과 사람의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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