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찾는 내 삶 가치 캠페인] 지역복지사업단 보담터 김동석
서울 노원구 중계로 장애인 거주 시설 더홈 지하 1층에는 조금 특별한 사업장이 있다. 손이 조금 느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자신 있는 곳. 실수가 있어도 누구 하나 크게 나무라지 않는 곳. 중증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보담터에서, 김동석 참여자는 두 번째 삶을 새롭게 일궈나가고 있다. 보담터는 직업재활과 자립 기회를 제공하는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이용자 17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주 5일, 하루 6시간 근로하며 비닐 포장지를 가공하거나, 커넥터 조립, 행주나 수세미 포장 등의 일을 한다. 신제품 출시를 위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치약짜개도 여러 방식으로 테스트 중이다. 보담터의 모든 수익은 이용자에게 근로 임금으로 돌아간다.

인생 2막은 워라밸과 함께
김동석 씨는 그 옆에서 이용자들이 작업한 포장이나 조립 상태를 검수한다. 이용자가 납품할 때 현장에 동행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납품할 인력조차 없을 경우에는 거래처까지 화물트럭을 직접 운전해 물건을 나른다. 거래처에서 새로운 임가공 물품을 받아오는 일도 한다. 짧은 나들이를 다녀올 때는 일일 보조교사가 되어 동료를 챙긴다. 다른 참여자들도 이 정도는 한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인터뷰에 동석한 엄광현 보담터 원장이 김동석 씨는 무얼 시켜도 다 하는 예스맨이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김동석 참여자를 포함해 총 네 분의 가치동행일자리 참여자들이 보담터에 출근하십니다. 그분들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참여자들은 한 달에 57시간만 나오면 돼 편하다고 말씀하시지만, 제 마음은 더 나와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분이 많아지고, 저희가 일을 많이 끌어올수록 보담터 이용자에게 조금이라도 많은 임금을 챙겨드릴 수 있으니까요.”

보담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엄광현 원장을 포함해도 총 네 명에 불과하다. 17명의 이용자 모두 안전하게 하루 일과를 마칠 수 있게 살피고,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빠듯한 인원이다. 게다가 일감을 받아와 납품하는 건마다 수익을 창출하는 보담터의 운영 방식상 거래처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인지 엄광현 원장은 가치동행일자리 참여자들의 공헌에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뒤질세라 김동석 씨도 보담터를 칭찬하고 나섰다. 참여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활동처라는 것.

“이곳에서의 활동은 힘을 써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절대 쉽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저한테는 여기가 딱 맞아요. 보담터에서 배려해준 덕분에 정해진 날짜 없이 그때그때 참여자의 일정에 맞춰 출근 가능한 날짜에 나올 수 있거든요. 출근하지 않는 날은 근교에 작게 꾸린 밭을 가꾸거나, 낚시하러 갑니다. 일도 하고, 보람도 챙기며, 남는 시간에는 여가까지 즐길 수 있어요. 한마디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챙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예전에 공직 생활을 할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상이죠.”

어머니가 선물한 두 번째 방향
김동석 씨는 처음부터 장애인 관련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그에게 장애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 건 어머니다. 오랜 공직 생활 동안 장애인 시설에 가끔 다녀오는 봉사활동이 전부였던 그가 돌아가시기 전 1년간 지체장애인 4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모셨던 것.
소중한 경험 덕분일까. 퇴직 후 서울시50플러스센터를 방문해 가치동행일자리 지원 분야를 훑던 눈길이 자연스레 장애인 시설 지원 분야에 멈췄다. 그렇게 김동석 씨는 이곳 보담터에 지원서를 냈고,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세 명의 참여자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김동석 씨는 과거 봉사활동을 다녔던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단언했다.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줄일 만큼 열심히 일한다. 퇴직 전 공직 생활을 할 때 지금 보담터에서 하는 만큼 일했다면 차관은 달았을 거라는 그의 우스갯소리가 마냥 허풍은 아닌 듯했다.

“저희는 이용자와 달리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죠.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일에 대략 이틀 나옵니다. 보담터에 출근한 지 벌써 몇 달 지났지만, 저는 지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이용자 동료들은 저보다 더 부지런합니다. 제가 도착해보면 이미 도착해 있더군요. 게다가 인사성은 얼마나 밝은지 모릅니다. 대문 앞에서부터 어찌나 반갑게 인사하는지, 작업장 들어올 때까지 인사만 수십 번 하고 나면 하루의 시작이 즐겁죠.”

확고한 위계질서와 경직된 공직 문화에 익숙한 그에게 보담터 작업장의 밝은 분위기는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같이 일하는 장애인 동료들의 때 묻지 않은 웃음을 볼 때마다 느끼는 바가 많단다. 하이파이브 같은 가벼운 스킨십이 기분 좋게 오가는 작업장에서 피어난 유대감은 또 다른 활력이 됐다. 일과 삶, 보람에 활력까지 함께 챙길 수 있는 활동이라니, 김동석 씨는 가치동행일자리 활동에 만족도 만점을 부여했다. 내년에도 보담터에 출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의 눈이 생기로 빛났다.
“은퇴 후의 삶이란 게 생각보다 굉장히 공허하더라고요. 그래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동년배 친구들도 이 좋은 기회를 널리 누렸으면 합니다. 2025년엔 가치동행일자리 모집 인원이 더 늘어나면 좋겠네요. 저도 또 참여해야 하니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