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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동방예의지국, “노인 존엄 다시 생각하자”

입력 2025-11-21 07:00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등 3개 기관 주최 국제포럼 현장… “연령주의는 구조적 차별”

▲브리짓 슬립 영국 휴먼라이츠워치 선임연구원이 20일 국제포럼 첫 발표자로 나서 ‘연령주의와 노인의 존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노인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때 존엄도 함께 무너진다”고 지적했다.(이준호 기자)
▲브리짓 슬립 영국 휴먼라이츠워치 선임연구원이 20일 국제포럼 첫 발표자로 나서 ‘연령주의와 노인의 존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노인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때 존엄도 함께 무너진다”고 지적했다.(이준호 기자)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20일 서울에 모였다. ‘초고령사회 취약노인의 사회적 고립 방지 국제포럼’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한국이 올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한 직후라는 점에서 무거운 현실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함께하는사랑밭이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장을 비롯해 이기민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정유진 함께하는사랑밭 대표이사 등 국내외 노인복지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김현미 센터장은 환영사를 통해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돌봄에서 소외된 어르신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지표”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 통합돌봄이 내년 본격 시행되는 만큼, 관련 기관들이 어떻게 연계해 고립 문제를 막아낼지 오늘 논의가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를 계기로 국제 포럼을 정기적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장이 20일 ‘초고령사회 취약노인의 사회적 고립 방지 국제포럼’ 개회 인사말을 통해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지역 돌봄의 재설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장이 20일 ‘초고령사회 취약노인의 사회적 고립 방지 국제포럼’ 개회 인사말을 통해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지역 돌봄의 재설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첫 발표자 브리짓 슬립 휴먼라이트워치 선임연구원은 “연령차별, 존엄, 인권”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발표를 시작하며, 한국에서 만났던 한 87세 여성의 이야기를 꺼냈다. 슬리프 연구원은 9월 방한 당시, 거리에서 밤새 폐지와 페트병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던 그 노인의 삶을 전했다. “기본연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비·바람·더위 속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녀의 삶에는 존엄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존엄’의 본질을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감각, 타인으로부터 존중받는다는 감각”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연령주의가 깊게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슬립 연구원은 “한국에서 만난 57세 남성 노동자는 젊은 직원들이 나이든 직원들을 ‘꼰대’라 부른다고 했다”며, 특정 세대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언어가 결국 노년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나이를 둘러싼 한국의 언어·문화적 편견에 대해서도 “외모·젊음 중심의 규범이 여성의 나이 들어감을 낙인화한다”고 분석했다.

연령주의는 일자리·정책에서도 구조적 차별을 낳는다고 그는 비판했다. 한국의 정년제도, 임금피크제, 재고용 구조 등을 언급하며 “나이를 이유로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일시에 낮추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초연금의 낮은 수준이 노년을 가족 의존 또는 거리노동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는다”며 “이는 존엄과 인권 모두를 침해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슬립 연구원은 노인 돌봄 정책의 핵심 방향을 ‘보호 중심’에서 ‘권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르신의 선택과 통제권을 빼앗은 채 ‘최선의 이익’을 타인이 판단하는 방식은 더 이상 존엄을 인정하는 접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인은 주거, 돌봄, 건강, 사회참여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는 국제인권규범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시설 중심의 돌봄 모델이 노인의 삶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흐를 위험성을 지적하며, 지역사회 기반의 돌봄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어르신이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보 접근권, 선택권, 거부권, 불만 제기와 구제 절차까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고령사회 취약노인의 사회적 고립 방지 국제포럼’에 참석한 내·외빈이 2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함께하는사랑밭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관계자와 국내외 연구자들이 자리했다.(이준호 기자)
▲‘초고령사회 취약노인의 사회적 고립 방지 국제포럼’에 참석한 내·외빈이 2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함께하는사랑밭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관계자와 국내외 연구자들이 자리했다.(이준호 기자)

두 번째 발표자인 하정화 서울대 교수는 한국 노인보호전문기관의 학대피해노인 개입모델을 소개했다. 최근 10년 사이 노인학대 신고가 꾸준히 증가한 가운데(2024년 기준 1만7670건), 그는 ‘강점관점’을 활용한 개입이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피해노인을 보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역량을 지닌 주체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원·관계망을 활용한 회복력 강화, 초기 위험징후 포착, 사례관리의 표준화 등 실천적 제언을 덧붙였다. 이는 기존의 위기 개입 중심 모델이 가진 한계를 넘어, 피해노인의 자립과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 번째 연단에 오른 홍송이 동국대 교수는 부모 부양 개념의 변화와 방임 재구성 문제를 다뤘다. 그는 가족구조 변동, 노인부부가구 증가, 고령 배우자 돌봄의 한계 등을 근거로 “전통적인 부양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특히 방임이 단순 가정 내 돌봄 부족을 넘어 제도적 장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방임 유형을 재정의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서적 학대 일부는 사실상 방임에 가까운 구조적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 노인가구의 취약성을 고려할 때 사회적 돌봄의 공공성 강화가 필수라는 점도 함께 제시됐다.

네 번째 발표자인 카이 라이히센링 유럽사회복지정책·연구센터 대표는 유럽 각국의 통합 장기요양 체계를 분석하며 지역사회 기반 예방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노인 돌봄을 후기단계 치료 중심이 아니라, 지역에서의 일상적 지원과 조기 개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통합 장기요양 시스템 내에서 의료·요양·주거·사회서비스가 단절되지 않도록 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럽의 ‘인간 중심’ 접근을 기반으로, 지역사회가 노인의 선호·자율·참여를 중심에 둔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마지막으로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은 한국 노인맞춤돌봄서비스의 미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고립 위험 증가, 1인 노인가구 급증, 인지저하·만성질환 복합 문제 등을 언급하며 기존 서비스 체계의 한계를 짚었다. 김 센터장은 “예방 중심의 맞춤돌봄 고도화를 위해서는 서비스 세분화, ICT 기반 위험 감지, 지역 보건·복지 연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술기반 모니터링과 생활지원사 역량 강화, 돌봄체계 표준화 등을 통해 돌봄 사각지대를 줄이는 전략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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