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리짓 슬리프 휴먼라이츠워치 연구원… 푸른 눈의 연구자가 본 한국 연령주의

지난 7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꿰뚫은 보고서 한 편이 화제가 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가 발간한 이 보고서의 제목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사람들(Punished for Getting Older)’이다. 이들은 한국의 정년제와 임금피크제 등 연령차별적 고용정책을 국제 인권의 시각에서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고령 노동자가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고 규정한다. 또한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체력·생산성 중심의 문화가 형성됐고, 이는 곧 나이 든 노동자를 가치가 낮은 존재로 간주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본지는 이 보고서에 참여한 브리짓 슬리프 노인인권 담당 선임연구원을 만나 제3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의 연령차별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노인’ ‘아줌마’ ‘꼰대’와 같은 단어를 한국어 그대로 사용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보여줬다.
“노인을 존중한다고 자부하는 사회에서도 연령차별은 존재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말하는 ‘존중’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존중이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존엄을 훼손하는 구조 속에서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슬리프 연구원은 이렇게 답했다. 노인을 공경하는 효(孝)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우리 사회가 왜 연령주의가 심각한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형식적 존중에 치우친 노인 존중, 연령주의 강화시켜”
“오랜 기간 전 세계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조사해 왔습니다. 국가와 문화가 달라도 연령차별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노인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도 차별은 은밀히 작동하죠.”
이렇게 설명하면서 슬리프 연구원은 한국에서 만난 남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나이 든 노동자들이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습니다. 한 공공기관에서 29년간 일한 57세 남성은 젊은 직원들이 ‘나이 든 동료를 꼰대(kkondae)나 쓸모없는 사람으로 본다’고 말했어요. ‘꼰대’는 원래 권위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주로 나이 든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의 직장문화는 위계와 연령질서를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슬리프 연구원은 “연령에 따른 높임말 체계와 상하서열 구조가 연장자에 대한 존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꼰대 문화와 연령차별을 강화한다”며 “이는 노인을 경직되고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고정시키는 사회적 낙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여성 노인에 대한 차별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젊음과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적 압박이 매우 강합니다. 30대 이후 여성은 ‘아줌마(ajumma)’라는 비하적 호칭으로 불리며, 사회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합니다. 2024년 인천의 한 헬스장은 ‘품격 있는 여성만 이용 가능하다’며 ‘아줌마 출입금지’ 문구를 내걸었죠. 이는 외모 중심 문화가 노년 여성의 존엄을 훼손하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존중’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존엄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존중은, 실제로는 노인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런 호의처럼 보이는 접근은 실제로는 노인의 의사와 무관하고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죠. 진정한 존중이란 노인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대 간 갈등은 구조 탓, 노인과 청년은 적 아냐”
그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반(反)노인 정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저의 연구는 주로 노인을 중심으로 하지만, 젊은 세대가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매우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 젊은 세대 중 상당수는 지금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현 제도의 과실은 고령 세대가 모두 취하고, 그 부담은 미래 세대인 본인들에게 지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기저에 깔려 있다.
슬리프 연구원은 “한국의 불충분한 연금제도는 노인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청년들에게 이야기했다. “노인들은 이 제도를 설계하지 않았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혜택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평생 동안 유급이든 무급이든 노동을 해왔음에도, 한국 노인의 약 40%가 상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어요. 이는 고소득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상당수가 50대에 강제로 퇴직당하고,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낮은 임금으로 힘들어하죠. 많은 이들이 젊은 세대가 기피하는 직종에서 일해요. 2023년 기준, 60세 이상 인구의 40%만이 국민연금을 받고 있고, 평균 수령액은 최저임금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려주고 싶어요.”
그는 “결국 그들도 노인이 된다”며 ‘그들 대 우리’로 편을 갈라 반목하기보다 서로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대를 탓하기보다, 세대가 연대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함께 목소리를 내어, 정부가 현재의 노인뿐 아니라 미래의 노인 모두가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연금제도를 마련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노인 스스로 자신을 차별하는 내면화가 더 문제”
그는 인터뷰 내내 ‘연령차별은 외부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장 해로운 것은 내면화된 연령차별입니다. 이는 노인 스스로가 ‘나는 너무 늙었어’,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어’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노인들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자신의 노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슬리프 연구원은 “이러한 자기 인식의 전환이 연령차별을 바꾸는 핵심”이라며, 제도와 인식의 이중 개혁을 함께 강조했다. “사회나 법이 ‘이제 나이 든 당신은 일할 자격이 없다’, ‘당신의 노동은 젊었을 때보다 가치가 낮다’고 말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노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어요. 노인의 노동 가치를 낮추는 제도들—예컨대 의무정년제나 임금피크제—는 폐지돼야 합니다. 또 나이 듦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노년의 긍정적 모델을 더 많이 만들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에 관계없이 노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완전히 속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 기대하는 긍정적 효과 얻지 못해”
우리 사회에서 연령을 기준으로 한 차별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는 일터다. 급격한 경제 발전은 ‘장인’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한정된 일자리를 젊은 세대에게 내어주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센스’나 ‘감각’ ‘창의력’ ‘체력’ 같은 단어 앞에서는 젊음이 곧 장점이 되고, 고령은 결함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기업 사회 전반에 고착됐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우리의 믿음은, 정년도 당연한 ‘물러날 때’로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정년제 연장이나 재고용 제도의 도입 주장에 비해 ‘정년제 폐지’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슬리프 연구원은 현재 한국 사회 고용시장을 “노동자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피해를 입게 만드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의무정년제는 일부 고령 노동자에게 강제 퇴직을 강요하며, 퇴행적인 임금정책은 급여를 삭감하고, 재고용 제도는 그들을 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몹니다. 불충분한 사회보장제도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 결국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죠. 한국의 현행법은 고용주가 만 60세 이상의 정년을 설정하도록 허용하고 있어요. 이는 공공·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고용주가 근로자의 능력이나 직무성과가 아니라 단순히 나이만을 이유로 퇴직을 강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는 기업에선 소위 ‘선진적’ 인사제도라고 평가받는 임금피크제에도 비평을 이어나갔다. “임금피크제는 ‘나이 든 노동자는 젊은 노동자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연령차별적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어요. 우리가 만난 많은 고령 근로자들이 임금피크제 아래에서 느낀 무력감, 박탈감, 분노를 호소했어요.”
그는 이 두 제도가 명백히 고령 근로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어떠한 이점보다 훨씬 크며, 의무정년제와 임금피크제는 그 취지로 내세운 ‘고령자 고용 유지’나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변화를 주문했다.
“무엇보다 먼저 법적으로 연령차별로부터의 보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정년 60세 허용 조항’과 같은 제도는 폐지하고, 나이를 이유로 불리한 근로조건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해요. 임금피크제도 예외일 수 없죠. 동시에 헌법에 ‘연령’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사회 전반의 연령차별 방어체계가 훨씬 강화될 겁니다.”
그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요구했다. “노화가 곧 생산성 저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해요. 기업은 다양한 연령층이 공존하는 인력 구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정부 역시 연령차별 인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모든 세대가 존엄과 인권에 기반한 ‘존중의 문화’를 갖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노년 여성의 빈곤, 성차별과 연령차별의 ‘이중고’
슬리프 연구원이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한국의 노인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저는 한국 여성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일자리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50대나 60대에 이른 대다수 여성에게 남아 있는 일자리는 청소나 돌봄 노동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일들은 사회적으로 필수적이고 중요한 노동이지만, 동시에 임금이 매우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사회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직종입니다.”
그는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는 성차별이 어떻게 생애 전반에 걸쳐 누적되는지, 그리고 40대 초반 이후에는 그러한 차별이 연령차별과 결합하여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탐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나이에 따라 체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구조는, 노년 여성의 연금이 남성보다 훨씬 적거나 아예 연금이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또한 여성의 노년 빈곤율이 더 높은 원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성차별과 연령차별이 누적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여성이 나이 들어 겪게 되는 불이익을 완화하고, 나이 들기 이전 단계에서 이러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 중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것은 노인”
슬리프 연구원의 연구 관심은 단지 노동과 제도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15개국을 조사하며 무력분쟁 속 노인 인권을 추적해왔다. “노인들은 전쟁이 벌어질 때 가장 쉽게 잊히는 존재입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조사한 결과, 무력분쟁이나 대규모 폭력 사태에서 노인 역시 젊은 세대와 똑같은 폭력과 학대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나이 때문에 위험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었죠.”
그가 들려준 사례는 참혹했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남쪽의 야히드네 마을에서는 러시아군이 35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교 지하실에 28일간 감금했습니다. 그곳은 환기도 되지 않고 비위생적이었으며, 그 기간 동안 사망자 10명은 모두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의 본질이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인질로 잡는 행위는 명백한 전쟁범죄입니다. 2023년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가 251명을 인질로 잡았는데, 그중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치매 환자를 포함한 고령자도 있었습니다. 노인은 이동이 어렵거나 가족이 돌볼 수 없어 피난하지 못한 채 폭력의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슬리프 연구원은 국제인도법과 인권법이 명시하는 ‘분쟁 중 노인 보호’ 조항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서로는 노인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쓰여 있지만, 실제 전쟁터에서는 그들의 생명이 언제든 지워집니다. 각국 정부와 무장세력, 유엔, 평화유지군 모두 노인에 대한 보호를 인권 의무로 인식해야 합니다.”
슬리프 연구원은 인터뷰를 마치며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흔히 나이를 ‘약점’으로 생각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나이는 정체성의 일부이자 권리의 기반입니다. 누구나 언젠가 노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노인을 위한 인권은 곧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인권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고령사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복지시설을 늘리는 일이 아닙니다. ‘노인이 존엄한 사회’란, 나이를 이유로 어떤 권리도 제한받지 않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슬리프 연구원은 내달 20일 다시 한국을 방문한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하는 ‘초고령사회 취약노인의 사회적 고립 방지 국제포럼’의 발표자로 초청을 받았다. 그는 ‘노인을 위한 돌봄과 지원: 인권을 정책으로 전환하기’를 주제로, 노인 돌봄의 인권적 접근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는 방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포럼은 11월 20일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