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⑱]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시장조사회사인 민텔(Mintel)이 9일 발표한 ‘2026 글로벌 소비자 예측(Mintel Global Consumer Predictions 2026)’ 보고서는 향후 5년, 소비의 주도권이 어디로 향할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인공지능, 경기불안, 지정학적 위기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이 중심에 선 변화’를 강조하며, 특히 고령화와 수명 연장에 따른 ‘젊음의 재정의’를 가장 중요한 축으로 제시했다. 민텔은 “전통적인 생애주기 구분이 사라지고, 소비자가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로 인생을 설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젊음과 확장된 중년의 만남
핵심 키워드는 ‘새로운 젊음(The New Young)’이다. 과거처럼 청년기와 노년기가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시대, 40대 이후에도 새로운 커리어와 관계, 취미, 소비를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민텔은 이를 ‘확장된 중년(Extended Middle of Life)’이라 표현한다. 인생의 중간 구간이 길어지면서 ‘젊음’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태도와 가치관으로 규정된다. 이 변화는 곧 시니어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한다. 단순히 노인 소비자층이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50~70대가 자기표현과 경험을 추구하는 ‘행동적 세대’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령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재조정을 전제하면서, 향후 2030년까지 브랜드 전략과 정책의 근본적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 예측한다. 첫째, 교육·금융·고용 구조가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재설계될 전망이다. 은퇴가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라 서서히 완화되는 과정으로 인식되면서, 노년층의 재취업·멘토링·창업이 새로운 경제 영역을 형성한다는 전망이다. 둘째, 건강·식음료·여행·금융 등 전통 산업에서 ‘장수 리스크’를 대응하는 상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는 단순히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해 투자라는 점이 기존과는 다른 부분이다.
삶 즐기는 시니어의 조력자 되야
민텔은 이러한 소비자 심리의 전환을 ‘풍요로운 삶(A Wealthy Life)’이라 명명했다. 과거 세대가 노후를 위해 저축했다면, 이제는 인생 전반에 걸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삶’을 지향한다. ‘미래를 위해 저축’보다 ‘오늘을 위한 투자’가 중요해진 것이다. 예컨대 자녀를 위한 재산 축적보다 함께하는 경험—가족 여행, 취미 활동, 공유된 추억—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이러한 경향은 금융·보험업계에도 도전을 던진다. 민텔은 “소비자들은 은퇴 이후보다 ‘은퇴 전’의 삶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금융 브랜드는 생애 전반의 균형—‘저축의 시간’과 ‘즐김의 시간’—을 설계해 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제2인생(A Second Life)’이라는 개념은 중장년층의 재도전 문화를 설명한다. 30~60대가 새로운 학업과 직업, 사랑, 거주지 등을 찾아나서는 흐름이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재구성(Reinvention)에 가깝다. 민텔은 “브랜드가 소비자의 재도전 여정을 동반할 때 가장 강력한 신뢰를 얻는다”고 지적한다. 패션·뷰티 분야에서는 나이보다 ‘나만의 스타일’을, 웰니스 분야에서는 ‘새로운 루틴의 시작’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의 프로에이징 브랜드 ‘스트라이프스 뷰티’는 중년 여성을 위한 여름 캠페인을 통해 ‘중년의 활력’을 미적으로 재해석했고, 다국적기업 네슬레의 자회사, 네슬레 헬스사이언스의 시니어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뉴트렌 시니어’는 “나는 나이 듦을 인정한다(I See Myself Pro-Age)”라는 캠페인으로 노화를 ‘긍정적 정체성’으로 전환했다. 태국의 대형 유통체인 로터스와 마크로는 2030년까지 60세 이상 근로자 40만 명을 고용하겠다고 발표하며, ‘시니어 친화형 고용 모델’을 실험 중이다.
중장년, 커뮤니티 참여 증가 예상
‘늙음의 연속성(An Older Life)’에 대한 통찰도 주목할 만하다. 민텔은 “노화는 점진적 과정이며, 은퇴는 하나의 이행기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고령 근로자의 경험을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대간 지식 이전에 적극적인 ‘멘토형 조직’이 증가하고,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과 휴식의 균형을 위해 시니어에게 더욱 적극적인 휴식과 휴가를 권장하는 제도 도입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특히 식음료 산업에서는 단순한 기능성 제품을 넘어, ‘활력과 안정을 동시에 주는 다층적 영양’이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 여가와 레저 분야에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다층적 참여가 새로운 소비 동력으로 부상한다. 민테은 보고서를 통해 “노년층은 가족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커뮤니티를 통해 경험과 지식을 나누게 될 것”이라며 노년층의 적극적인 공유 문화의 확장 가능성을 소개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데이터는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캐나다 밀레니얼 세대의 36%가 “앞으로 5년간의 우선순위는 저축이 아니라 인생의 즐거움과 추억 만들기”라고 답했으며, 중국의 40~65세 소비자 84%는 “연금 지연 시대에 신체 건강 유지가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일본은 2070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39%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민텔은 이처럼 각국의 인구구조 변화가 문화·산업·노동의 패러다임을 동시에 바꿔놓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소비자 나이만 세다간 감 잃어
‘젊음의 종말’이 아니라, ‘젊음의 확장’이 시작된 것이다. 민텔은 브랜드가 세대를 구분하기보다 ‘생애 전환기’ 전반을 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고서가 말하는 “50세가 된 소비자는 여전히 1999년처럼 파티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년의 소비자가 더 이상 나이에 맞는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시니어 비즈니스 업계 역시 이 흐름을 정밀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노년층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기존 복지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활동적인 ‘액티브 시니어’ 세대를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은 경험·건강·자기표현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제품이 아니라 ‘나의 서사’를 구매한다. 따라서 시니어 산업의 성공은 돌봄기술의 혁신만큼이나, 삶의 재설계와 재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 구축에 달려 있다.
민텔은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묻는다. “브랜드는 사람들의 나이를 세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변화하는 여정을 함께 가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시니어 비즈니스 업계에도 이 질문은 유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