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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입력 2025-08-26 07:00

[북인북] 권현미·윤여준 작가의 교환일기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친정엄마를 생각하는 마음과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마음이 닿아 있는 ‘거리’의 차이라기보단 마음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져요. (…) 엄마와는 이런 교환일기를 못 쓰겠다 싶기도 해요. 해보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엄마와 이런 글을 주고받는다면, 어린 시절의 철없는 제가 튀어나와 감정이 앞선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 ‘가족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66p

딸 같은 며느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직접 경험한 이들은 많지 않다. 권현미·윤여준 작가는 그 통념에 조용히 균열을 낸다. 신간 ‘가족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는 나이 차를 넘어 ‘현미 씨’와 ‘여준이’가 된 두 여성의 이야기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늘 미묘한 경계 위에 있다. 가까워지면 부담스럽고, 거리를 두자니 섭섭하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친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반박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꼭 친해져야 할까?”일 것이다.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는 쿨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야말로 요즘 세대가 지향하는 추구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누구보다 따뜻한 공감과 다정한 마음을 나누며 일종의 사회 실험을 한 이들이 있다. 1964년생, 38년 차 며느리이자 5년 차 시어머니 권현미 작가(이하 현미)와 1992년생, 5년 차 며느리 윤여준 작가(이하 여준)다.

시작은 여준의 제안이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여준은 어느 날 현미에게 교환일기를 쓰자고 청한다. 그는 사실 현미를 처음 보자마자 사람 대 사람으로 호감을 느꼈다. 아픈 날이나 불안이 가득 차는 날에 여준은 친정엄마가 아닌 현미를 찾았으며, 두 사람은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다.

그렇게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싶어 3년간 주고받은 교환일기는 ‘가족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가 됐다. 어쩌면 결혼의 패키지 상품처럼 얼결에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게 됐지만, 교환일기는 불문율을 상쾌하게 깬 계기였을 터다.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두 작가의 문장을 살피다 보면,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내던 관계의 의미를 곱씹어볼 기회가 될 수 있다.

▲권현미·윤여준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권현미·윤여준 작가의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작가님들, 출간을 축하드려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현미 “며느리랑 그런 걸 해?” 하더라고요. 부러워하면서도 “이거 우리 며느리한테는 주면 안 되겠다”는 말도 들었어요. 괜히 부담 줄까 봐 걱정된대요.

여준 “시어머니랑 교환일기를 왜 써?”, “어떻게 허락을 받았대?”라고 되묻는 경우도 있었어요. 막상 책을 읽은 친구들은 어머님 글을 훨씬 좋아하더라고요. 따뜻하고 묵직해서, 그 세대를 이해하는 창처럼 느껴졌다나요?

여준 작가님이 현미 작가님께 교환일기를 제안했다고요.

여준 어머님을 처음 뵙고 사람 대 사람으로 호감이 생겼어요. 늘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어머님이 그에 딱 맞는 분이었죠. 따뜻하고 단단한 분인 것 같아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자 교환일기를 제안했어요. 제 생일마다 손편지를 써주시는데, 심상치 않은 필력(?)을 보고 가능성을 느끼기도 했고요.

현미 처음엔 책이 될 줄 몰랐어요. 글을 써본 적도 없고, 그저 좋은 취지 같아서 시작했죠. 쓰다 보니 아들도 몰랐던 제 과거 이야기, 가족과의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요.

쓰는 과정에서 어떤 순간이 기억에 남나요?

현미 처음엔 휴대폰으로 바로 썼는데 내용이 통째로 날아간 적이 있어요. 기계는 믿을 수 없다 싶어서 그 후로는 노트에 먼저 썼죠. 카페에 가서 글을 다듬고 타이핑을 마치면 서너 시간은 걸리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이 왜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지 이해되면서, 나도 전문가가 된 것 같아 참 으쓱했어요. 눈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썼던 기억도 아직 선명해요. 여준이 덕에 과거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 시절, 부단히 애쓴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었죠.

여준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일기 쓰는 날’이 되면 오히려 편해졌어요. 다만 온라인 세계가 익숙하지 않은 어머님이 모든 일기를 손으로 쓴 뒤 자판으로 쭉 옮겨 적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많이 미안했어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 거리감도 있을 법한데요.

여준 결혼 전 예비 며느리 신분으로 함께 여행을 갔어요. 밤에 와인을 마시다 어머님이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털어놓으셨어요. 덩달아 저도 품고 있던 얘기를 꺼냈고요. 그때 ‘이 사람들에겐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구나’ 생각했어요. 그날 이후 훨씬 편해졌죠.

현미 여준이는 원래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에요. 특유의 맑은 웃음이 사람을 무장해제시키죠. 저도 벽을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았던 것 같아요. 우리 아들도 “여준이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말하는데, 예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이런 고부 관계도 있단 말이야?” 하는 반응도 있을 것 같아요.

현미 그럴 수 있죠. 아무래도 우리 세대는 시집살이 기억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정답이라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상대에게 맞추는 거예요. 며느리가 거리를 원하면 그걸 존중하고, 다가오면 마음을 열면 되는 거죠.

여준 어머님은 성급한 판단이나 평가는 삼가고 정서적으로 다가오되, 사적인 영역은 건드리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 경계가 분명할 때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고 느끼거든요. 기댈 가족이 한 명 더 생겨서 기뻐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여준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 정신을 붙들어 매는 힘이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여준이는 불안이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치는 능력을,

나는 불안이 커질수록 빨리 수평을 유지하려고 하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닐까.

어쩌면 여준이가 일상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힘이 더 크고 단단한 것인지도 몰라.

그래서 D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휘둘릴 때도

여준이가 D의 완벽한 한편이 되어줄 수 있는 것 같고 말이야.

- ‘가족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190p

이 관계의 숨은 조력자는 도영 씨(아들이자 남편) 아닐까요?

현미 도영이는 항상 여준이가 1순위라고 말해요. 처음부터 “엄마, 여준이가 먼저야”라고 딱 선을 그었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여준 고부 갈등의 원인은 ‘효자’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근데 남편은 적당히 능청스럽게 빠져나갈 줄 알아요. 어머님도 뭔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고요.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연결된 느낌? 그게 참 좋았어요.

서로를 글로 알게 된 후 관계가 달라졌나요?

현미 분명 더 가까워졌어요. 원래는 ‘아들의 아내’였겠지만 점점 여준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그걸 묻고, 듣고, 이해하게 됐어요. 저는 시어머니랑 그런 과정을 겪지 못했어요. 그래서 여준이와는 더 알아가고 싶어요.

여준 3년간 교환일기를 쓰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터라 둘만의 비밀 쪽지를 주고받는 기분이었죠. 서로 키득거리면서 ‘언제 쓸 거냐’고 묻기도 하고요. 재밌었어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요?

현미 여준이와는 마음의 물길을 텄어요. 언젠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이 아이에겐 “나 이렇게 떠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딸한테는 감정이 앞설까 봐 조심스럽지만요. 그만큼 소중해진 여준이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 이제 아들은 다 키웠고 결혼도 시켰으니 반품이나 AS는 사절이에요.

여준 어머님, 결혼식 날도 그 말씀 하셨어요.(웃음) 우선은 어머님이 전업주부로 지내시다 첫 인세를 받으셨으니 한턱 쏘실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은 교환일기를 잠시 쉬고 있는데, 어쨌든 언젠가 또다시 일기를 시작하겠죠. 그때는 더 내밀하고 더 다정한 이야기가 오갈 거예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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