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니어 라이프] 잎사귀와 무공해로 다시 살아난 산골 마을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카쓰초(徳島県上勝町)는 약 1300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2025년 3월 1일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55.9%에 달해 도쿠시마현 내에서도 초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매년 국내외에서 약 9만 명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 그 중심에는 ‘잎사귀 비즈니스’와 ‘제로 웨이스트 센터’라는 독자적인 지역 재생 모델이 있다. 작은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그곳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일본 요리는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색감과 배열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따라 요리에는 장식용 잎사귀와 꽃, 즉 ‘쓰마모노(つまもの)’가 자주 사용된다. 요코이시 도모지(横石知二, 66) 씨는 이 문화에 착안해 식용이 아닌 장식용 잎사귀를 수집하고 출하·판매하는 ‘잎사귀(葉っぱ) 비즈니스’를 고안했다.
1986년 농협 직원 시절, 요코이시 씨는 한 여성이 식당에서 장식용 잎사귀를 손수건에 싸 가는 모습을 보고 ‘잎사귀도 팔 수 있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가미카쓰초는 90% 이상이 산지로, 사방에 잎사귀가 널려 있었다. 더욱이 마을 고령자들은 지역의 수목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말 그대로 ‘잎사귀 전문가’들이었다. 체계적인 시스템만 갖춘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요코이시 씨는 유통전문 주식회사 ‘이로도리’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한파로 밀감 농사가 망하며 농민들은 절망했고, 잎사귀 판매에 회의적이었다. 네 가구만 협력했지만 첫 출하는 실패했다. 그는 자비를 들여 2년간 고급 요리점을 찾아다니며 시장을 분석하고 재배 기술을 연구했다.

“시골 노인 자존심 자극” - ICT 시스템
잎사귀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데는 ICT 시스템의 역할이 컸다. 이로도리사와 지역 농협이 협력해 고령 농가에 태블릿과 컴퓨터를 지원하고, 실시간 주문 시스템을 구축했다. 젊은 직원들이 농가에 기기 사용법을 교육했고, 기기 고장 시 요코이시 사장이 직접 수리에 나서기도 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고령 농가의 경쟁심을 자극해 동기를 부여한 점이다. 개인별 매출과 순위를 공개해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한 시장 동향과 출하 상황도 실시간 확인이 가능해, 과잉 공급을 방지하고 품질도 일정하게 유지됐다. 무엇보다 300여 종을 소량 다품종으로 재배·직판하며 당일 발송이 가능해 시장 대응력이 뛰어났다.
ICT 도입 당시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무슨 컴퓨터를 써?”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스마트폰조차 흔치 않던 시절, 키보드를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노인들에게 IT 기기를 도입한다는 발상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게다가 대부분 영어에도 익숙하지 않아 더욱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요코이시 사장의 전략은 의외의 방향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각 농가의 매출 금액과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공개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저 사람보다 더 많이 팔고 싶다’, ‘1등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가졌다. 요코이시 사장은 “시골 노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이 특성을 역이용했다”고 설명했다.

‘◯’ 하나에 웃고, ‘X’ 하나에 울다
매일 오전 8시, 농협의 주문 정보가 시스템에 올라오면 농민들은 주문을 따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주문을 획득하면 화면에 동그라미(◯), 실패하면 엑스(X)가 표시된다. 단순한 표식 하나에 농민들의 희비가 갈린다. 이 모습은 2012년 영화 ‘알록달록한 인생(人生, いろどり)’에도 담겨 화제를 모았다.
요코이시 사장은 “이 산골에서도 할머니들이 태블릿으로 온라인 주문을 받는다. 연 수입 1000만 엔(약 9500만 원), 부부 기준으로 2000만 엔 이상 버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돈을 버니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고 소개했다.
요코이시 사장은 잎사귀 비즈니스의 향후 전망에 대해 “해외 판매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 레스토랑이 있는 두바이, 베트남, 홍콩, 싱가포르 등에 납품하고 있어요. 일본은 30년간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점점 싼 제품만 찾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비싸더라도 가치 있는 제품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합니다. 게다가 현재 엔화 약세로 해외 시장이 더욱 유리해지고 있어요.”
가미카쓰 마을은 도쿠시마 공항에서 차로 1시간 15분 거리로, 신선한 잎사귀를 빠르게 해외로 배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해외 에이전시는 이곳에서 보낸 잎사귀를 6~8배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해외 판로 확대에 더욱 전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한다.

일은 생계를 넘어 삶의 기쁨
요코이시 사장은 고령자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의미라고 강조한다. 뇌경색으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된 다무라(田村) 씨 부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부부는 16년간 꾸준히 잎사귀를 수확하며 연간 450만 엔(약 4300만 원)을 벌었다. 다무라 씨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일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이로도리사에서 일하고 있는 고령자인 올해 88세의 니시가게(西陰)씨를 만나봤다. 가파른 산 중턱에서 혼자 생활하는 그는 매일 아침 컴퓨터를 통해 시장 주문 상황을 확인한 뒤, 주문을 획득하면 집 근처에서 나뭇잎을 채취한다. 산짐승과 마주치는 일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원숭이에게 옥수수를 도둑맞은 일화를 웃으며 들려주기도 했다.
니시가게 씨는 “27년간 이 일을 했고, 우리 집엔 59개국 손님이 다녀갔다”면서 액자에 넣어 소중히 보관한 외국 화폐들을 자랑한다. 몇 살까지 일하고 싶은지 묻자, 호탕한 웃음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여기서는 80대면 아직 한창 일할 나이예요. 97세 최고령자도 일하고 있어요. 나뭇잎은 가벼워서 채취하는 게 어렵지 않거든요. 저는 100세까지 계속할 거예요!”
니시가게 씨는 “잎사귀 따는 일이 제가 살아가는 기쁨이자 활력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외국인과 헤어지기 아쉬웠던지, 그는 한참 동안 대문 밖에 서서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
요코이시 사장이 또 하나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의 인재 육성이다. 이로도리는 10년 넘게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20~30대 인턴이 100가구 정도 있습니다. 독신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이주해 잎사귀 비즈니스를 배우는 경우도 많아요. 이곳에 오는 젊은이들은 환경문제를 공부하거나 유학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감수성이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요코이시 사장은 단순한 인구 증가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순환형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일이 즐거워야 지속할 수 있습니다. 농가 할머니들도 상품이 팔리는 것이 즐거워서 밤늦게까지 일하거든요. 시골 생활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면 마을이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교육 수준의 향상이다. 도시에 비해 시골 지역은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기를 바란다. 즉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지방 활성화는 불가능하다.
이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었다. ‘학원이 없으면 우리가 직접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한 온라인 학습 학원을 시작했다. 특히 ‘현직 동경대 학생 강사의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제공하는 원격 교육 서비스 업체와 제휴해, 가미카쓰 마을에서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쓰레기차 대신 제로 웨이스트 센터
돌아오는 길에 가미카쓰초의 또 다른 명소, 제로 웨이스트 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은 쓰레기 배출 없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문을 연 공간으로, 환경을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이 마을에서는 농가 자택에 소각 시설을 설치해 타이어부터 생활 쓰레기까지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산불 위험으로 인해 1990년대 이후 소각이 금지되었다. 1998년 마을에서는 공용 소각장 두 곳을 건설했지만, 2000년 한 곳이 고장 나면서 재정 부담과 환경문제를 동시에 고려한 해법으로 2020년 4월 센터가 들어섰다.
가미카쓰초의 가장 큰 특징은 쓰레기 수거차가 없다는 점이다. 대신 주민들이 직접 쓰레기를 제로 웨이스트 센터로 가져와 13종류 45개 항목으로 세밀하게 분리한다. 이렇게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면 소각 및 매립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절약할 수 있으며, 처리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현재 이 마을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80%에 달한다.
센터 내부를 둘러보던 중 재활용품으로 나온 옷, 그릇, 장난감, 가구 등이 진열된 공간이 눈에 띄었다. 젊은 직원은 “이곳에 전시된 재활용품은 정말 인기가 많다. 쓰레기를 버리러 온 주민이 가정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갖다놓으면, 다른 주민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자원 순환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지방이 살아남는 법을 배우다
센터 옆에 둥근 통나무로 지은 작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엇인지 궁금해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제로 웨이스트 방문객을 위한 숙박 시설이었다. 그는 “국내는 물론이고 유럽, 태국, 나이지리아, 대만에서도 견학을 온다. 쓰레기 배출 없는 마을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친환경 호텔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가미카쓰초는 이제 환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수 방문지가 된 것이다.
가미카쓰초의 잎사귀 비즈니스나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한국 역시 지방 소멸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지방이 생존하려면, 단순히 사람을 모으는 것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도 일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우리 실정에 맞는 지역 활성화 전략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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