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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신비로움 간직한 키프로스 4대 CC

기사입력 2025-05-23 08:49

[세계 CC 탐방] 신화와 자연, 전략과 감동이 응축된 섬나라

지중해의 푸르름을 품은 키프로스(Cyprus)는 고대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지로 알려진 낭만적인 섬나라다. 그러나 필자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낭만이 아닌 도전이었다.



2025년 3월, 키프로스의 4개 골프 코스와 이탈리아 로마 인근 3개 코스를 포함해 총 7개 골프장을 돌며 9박 12일간의 장대한 라운드를 마쳤다. 그 가운데서도 키프로스 일정은 골퍼라면 생애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완벽한 조합이었다. 신화와 자연, 전략과 감동이 한데 어우러진 골프의 진경이 이 작은 섬에 응축돼 있었다.

키프로스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직항편이 없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열 시간 가까이 레이오버를 거쳤고, 전체 비행시간은 30시간에 육박했다. 그러나 공항에 내린 순간, 활주로에서 직접 비행기 사다리를 타고 내려 걸어가는 방식은 이국의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작고 단출한 공항, 해안과 가까운 조용한 숙소. 파포스 외곽의 아테나 로얄 비치 호텔에서의 밤은 낯설면서도 평온했다.


엘레아 골프클럽

닉 팔도 경(Sir Nick Faldo)이 설계해 2010년 문을 연 엘레아 골프클럽은 키프로스 골프의 ‘현재’를 상징한다. 파71, 총 연장 6775m(화이트 티 기준). 파포스 국제공항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엘레아 에스테이트 단지에 위치한 이 코스는, 돌과 덤불의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거칠게 솟은 바위 군락과 그 사이를 누비는 페어웨이, 모래와 석회질이 혼합된 벙커들이 마치 고대 그리스의 돌비탈처럼 골퍼를 시험한다. 시그니처 홀인 9번 홀(파5, 509m)은 세컨드 샷 이후 오른쪽으로 호수를 따라 길게 휘어지며, 커다란 바위가 받친 돌 제방이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코스 자체만이 아니었다. 캐디 마스터에서 바텐더까지 모든 직원이 친절했고, 클럽하우스 시설 또한 현대적이면서도 정갈했다. 실력과 감성, 서비스의 3박자가 잘 갖춰진 코스였다.


민티스 골프클럽

민티스는 키프로스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다. 1994년 도널드 스틸(Donald Steel)의 손길로 시작됐고, 이후 2006년 톰 매켄지와 마틴 에버트가 재정비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맞았다. 해발 800m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12세기 수도원을 품고 있는 코스로, 키프로스의 ‘과거’를 골프장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투라 2000 자연보호 구역 한가운데 있어, 자연과의 조화는 어느 코스보다 뛰어나다.

10번 홀(파4, 413m)은 민티스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티잉 구역에서 50m 아래로는 울창한 나무숲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 숲 아래로 공을 날려 페어웨이를 지키려면 샷에 확신이 필요하다. 기교보다 신념이 더 중요하다.

시그니처 홀인 15번 홀(파3, 150m)은 물속의 섬처럼 떠 있는 아일랜드 그린이다. 벙커도 페어웨이도 없는 단순함 속에 잔혹한 미학이 숨어 있다. 바람 한 점에 따라 공의 생사가 좌우된다.



시크릿 밸리 골프 리조트

세 번째 일정은 시크릿 밸리에서의 9홀 라운드. 파포스 국제공항에서 남동쪽으로 16km, 아프로디테 힐스에서 불과 6km 떨어진 이 코스는 1996년 처음 설계된 후 2013년 대대적으로 리뉴얼됐다. 브리티시오픈과 US오픈 우승 경력을 지닌 토니 재클린이 수석 설계를 맡았고, 독일과 아이슬란드의 유명 설계자들이 참여해 코스를 재탄생시켰다.

이곳은 밝은 색 석회암 절벽과 계곡,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장엄함 속에 갇힌 느낌이다. 짧은 블라인드 구조의 7번 홀(파4, 304m)과 8번 홀(파4, 345m)은 정확한 티 샷 없이는 파를 꿈꿀 수 없고, 시각적·심리적 부담이 극심하다.

골프 디렉터 아담 콜린슨은 격의 없고 친절한 태도로, 이 코스가 골프장 그 이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아프로디테 힐스 리조트

마지막은 키프로스의 자존심, 아프로디테 힐스다. 키프로스 내 유일한 PGA 내셔널이며, 수많은 국제 대회가 열리는 명문 코스다. 필자는 이곳에서 9홀만 라운드했지만, 그 강렬함은 지금도 꿈결처럼 생생하다.

7번 홀(파3, 210m)은 그야말로 ‘말문을 닫게 하는’ 홀이다. 카트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지나가면, 거대한 절벽 아래 아마존처럼 깊은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티에서 핀까지 130야드. 하지만 눈앞에는 낭떠러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린은 멀리 맞은편에 조용히 떠 있으며, 이 짧은 홀은 수많은 파5 홀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지는 8번 홀(파4, 352m)은 다시금 감탄을 자아낸다. 왼편에는 7번 홀 전경이 한 폭의 벽화처럼 흘러가고, 전방에는 푸른 지중해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곳이야말로 아프로디테가 몸을 씻었다는 전설이 그대로 살아 있는 무대다.

라운드를 마친 마지막 날, 파포스 시내를 둘러보았다. 왕들의 무덤, 고대 로마 시대 모자이크, 무엇보다 ‘페트라 투 로미우’라 불리는 아프로디테의 바위.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에서 여신이 바다 거품을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섬처럼 홀로 떠 있는 모습이 실로 신비롭다.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풍경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기억을 새기는 일이다. 키프로스는 이 모든 과정을 품에 안은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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