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세대 활동 연령 통합 필요… 신체ㆍ인지 우선 ‘기능적 연령’ 의견도

현대사회에서 연령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있다. 기존의 노인과 청년, 중장년이라는 나이 구분이 사회적 역할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삶의 방식과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개념이 바로 ‘에이지리스(Ageless) 사회’다.
갈 길이 먼 에이지리스 시대
에이지리스 사회로의 도약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이는 고령화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변화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고령화와 노동시장의 충돌, 세대 간 갈등, 디지털 격차 등과 같은 도전 과제들을 안고 있다.
평균 수명은 증가했지만, 60세 전후로 정년을 맞이하는 구조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활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노인들과 일자리 부족을 호소하는 청년들의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운전면허 반납 등의 정책에 일률적으로 연령 기준을 적용하면서, 개인의 실제 건강 상태나 경제적 필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에이지리스보다 연령 통합
‘에이지리스 사회’는 일본 아베 정권 시절 발표된 ‘고령사회 대책 대강(2013년 2월)’에서 처음 등장했다. 노동, 교육, 생활환경, 의료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령에 따른 제약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다. 일본은 노동력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년층의 노동 참여를 독려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단순히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아베 정권이 이야기한 에이지리스의 핵심은 연령을 아예 의미 없는 요소로 만들고, 개인의 의사와 능력에 따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완전한 에이지리스로 가기에 어려움이 있으니, 우선 연령 통합 시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령 통합(Age Intergration)은 연령 구분을 줄이고 다양한 연령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세대 간 통합과 협력이 핵심이다.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교육과 노동,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기관, 특히 대학이 특정 연령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학습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한다. 미국과 영국 등 유럽에서는 이미 대학 내 실버타운을 조성하고, 노인들이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학습 하는 환경을 구축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에 대학 연계형 실버타운(UBRC)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기업에서도 정년을 철폐하거나 유연하게 조정하는 강구책이 필요하다. 일본처럼 ‘재고용제도’를 도입해 일정 연령 이후에도 근무를 희망하면 급여를 조정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정 교수는 “연령 통합이란 연령 기준을 완전히 철폐한다는 것이 아니라, 연령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능적 연령(Functional Age) 개념을 도입해 나이보다 개인의 신체적·인지적 기능을 중심으로 사회 시스템을 조정해나가야 한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근본적인 인식 전환부터
연령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협력과 공존이 필수다. 정순둘 교수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노인 혐오 등 세대 간 갈등을 언급하며, 이는 “지역사회 내에서 노인과 청년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세대 간 접점이 적어질수록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세대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커뮤니티 형성뿐만 아니라 일자리 공유 방식으로 세대 간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의견이다.
연령이 사회적 기준이 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능적 연령 개념을 도입해 개인의 신체적·인지적 상태와 환경을 고려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연령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원하는 일을 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과제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연령의 벽을 허물고 좀 더 유연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때다.
도움말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인 복지와 사례 관리 분야 연구의 권위자로 가족과 사회적 지지, 성공적 노후, 우울증, 베이비부머와 은퇴 준비, 연령 통합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 소장, 2023년부터 제33대 한국노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