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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게 조언하는, 이상적인 말과 글이 순환하는 삶

기사입력 2024-05-29 09:04

[강원국의 글발 만들기] 읽고 싶은 욕구를 다듬고 쓸거리를 찾는 법

학창 시절 내내 읽고 들으면서 살았다. 직장 생활 할 때도 그랬다. 지금은 듣거나 읽은 걸 말하고 쓰면서 산다. 읽고 듣는 만큼 말하고 쓴다. 말하기와 쓰기가 내 삶에 비중 있게 자리 잡았다. 또한 말하고 쓰려니 읽고 듣지 않을 수 없다. 읽고 듣기만 하면서 살 때보다 읽기와 듣기가 더 소중해졌고, 더 많이 읽고 듣는다. 이로써 읽기, 듣기와 말하기, 쓰기가 서로 통한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듣는 것은 어릴 적부터 잘했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들었다. 선생님 말씀, 직장 상사 말을 잘 듣는 것으로 인정받고자 했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할 리가 있겠는가. 잘 들어주면 자기를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잘 들어준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열린 자세로 자기와 다른 생각,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하기 바쁘다. 남이 말하는 사이 할 말이 생각나거나 그 말이 자기 생각과 다르면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 생각의 속도는 말의 속도보다 빨라서 남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진득하게 듣는다. 별로 할 말도 없거니와, 내겐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수지맞는 일이다. 그들의 말에서 뭐 하나라도 알고 배우는 게 좋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경우에도 혹시 몰라 끝까지 들어본다. 그러니 듣는 태도가 나쁠 턱이 있겠는가. 그 덕에 기업 회장과 대통령의 말을 듣는 자리에서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얻는 게 많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그걸 알아야 그들이 내게서 듣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대통령이나 회장의 글을 쓸 때 네 사람에게 듣고 썼다.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이나 회장 본인의 말을 듣는 것이다. 그분들의 말을 전해 듣기도 하고 배석해서 듣기도 하지만, 직접 만나 궁금한 건 물어보면서 듣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기본적인 사항을 숙지하고 관련 내용을 충분히 공부한 후 만나야 한다. 두 번째로 듣는 대상은 대통령이나 회장의 말과 글을 듣거나 읽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무엇이 궁금한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 세 번째는 전문가다. 대통령이나 회장이 하고 싶은 말과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쓰려면 이걸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론이나 제3자의 객관적인 의견을 듣는다. 이렇게 네 사람에게 잘 듣기만 해도 크게 엇나가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잘 듣는다는 의미는 일곱 가지를 잘하는 것이다. 첫째는 ‘이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먹어야 한다. 이를 위해 듣는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둘째는 ‘요약’이다. 들은 내용을 압축하고 핵심을 추려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듣기는 요점을 간추리는 행위와 다름없다. 셋째는 ‘유추’다. 말하는 사람은 다 말하지 않는다. 건너뛰는 게 많고 표정과 감정으로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듣는 사람은 눈치로 말하지 않는 빈칸을 채우고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눈치가 유추 능력이다. 넷째는 ‘질문’이다. 들으면서 물어봐야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알고 싶은 걸 알 수 있다. 질문을 통해 대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공감’이다. 얘기를 듣고 간추리고 궁금한 걸 물어 대답을 들었으면 그 말에 동의하고 동감을 표해야 한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이 신이 난다. 여섯째는 ‘비판’이다. 상대 말을 듣기만 하고 공감만 해서는 안 된다. 자기 말도 추가해야 한다. 상대 말에 반발하고 반대하고 이의를 제기하라는 게 아니다. 상대 생각을 보완해주고 도움으로써 더 나은 대안이나 제3의 의견을 찾아가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건설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일곱째는 ‘실행’이다. 들은 내용을 적용하고 활용하고 응용해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거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들은 다음은 말할 차례다. 들은 내용은 남의 것이다. 내 말이 내 것이다. 듣기만 하며 살다가 내 삶을 끝낼 순 없는 것 아닌가. 말해야 한다. 말을 하면 또한 얻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을 하면서 할 말이 생각난다. 무슨 조화인지, 말하기 전에는 없던 생각이 말하면서 떠오른다. 그럴 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맛본다. 뿐만 아니다. 말을 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자기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 자신이 참으로 기특하다는 효능감을 느낀다. 나아가 말을 하면 반응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어떤 말에 시큰둥한지 알 수 있다. 말을 하면서 반응 좋은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나는 주로 말해본 걸 글로 쓴다. 말할 수 있으면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말이 거듭되면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차이가 내 말을 더 재밌게 진전시킨다. 또한 말은 하면 할수록 말하는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이것을 글로 쓰는 걸 촉진한다. 말한 내용을 글로 쓰면 구어체로 쓰여 읽기도 편하다. 그래서 나는 써야 할 글이 있으면 먼저 말해본다. 아니 말해보지 않은 내용은 쓰지 않을 정도로 내가 쓰는 모든 건 말해본 것들이다. 말해보면 쓸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말해보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무얼 더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말하다 보면 읽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왜 읽어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지고, 읽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

읽기는 크게 세 방향으로 해왔다. 첫째는 내 문체를 만드는 읽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롤모델인, 그처럼 쓰고 싶은 작가가 있을 것이다. 그가 쓴 글의 내용이나 세계관과 상관없이 그의 문장과 표현, 문체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이병주, 김훈, 이문열 선생 등이 본받고 싶은 모델이었다. 그런 사람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의 글을 흉내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글을 쓰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내가 쓸 글감을 얻기 위한 읽기다. 나는 쓰기 위해 읽는다. 그러므로 읽으면서 쓸거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눈을 부릅뜨고 쓸거리를 찾으며 읽는다. 한 꼭지 글을 읽었는데 쓸거리를 얻지 못하면 다시 읽는다. 찾을 때까지 읽는다. 그러면 반드시 찾게 된다. 찾은 건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내 글에 써먹는다. 어느덧 내 뇌는 쓰기 위해 읽고, 읽으면 무언가를 기필코 찾아내고야 마는 습성을 갖게 됐다.

세 번째는 벌이를 위한 읽기다. 나는 강의가 주 수입원이다. 강의를 잘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런 콘텐츠를 구축하는 유일무이한 길이 독서다. 적어도 내가 강의하는 분야인 글쓰기, 말하기, 소통 등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읽고, 읽어보지 않은 책이 없다고 자신할 정도의 독서를 하려고 힘을 쏟는다.

듣고, 말하고, 읽었으면 다음은 쓰기다. 나는 들은 내용을 쓰고, 말하기 위해 쓰고, 읽은 후 무언가를 쓴다. 그 무언가가 바로 메모다. 내게 메모는 일상적인 습작 활동이고, 언젠가 써야 할 글쓰기의 재료를 장만하는 일이다. 읽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메모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받아쓰기는 내 글쓰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용하기 위해 메모한 건 나중에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자주 사용할 수도 없다. 내 글에서 남의 글 인용 비중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들은 것 중에 내 것을 찾거나 내 것으로 만들어 그것을 메모한다. 그건 메모하는 과정에서 이미 내 것으로 체화된 것이다. 굳이 나중에 찾아볼 필요도 없고 내 글에 내 것으로 써먹을 수 있다.

나는 메모할 요량으로 글을 읽고 남의 말을 들으므로, 메모는 글을 읽고 말을 듣는 목적이 된다. 만약 메모하지 않고 읽고 들으라고 하면, 나는 읽기와 듣기를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메모는 읽기와 듣기를 이끄는 견인차다. 메모가 늘어날수록 나는 더 읽고 더 듣고 싶다. 그럴수록 메모를 더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해둔 분량이 늘어나면 메모 덩어리 표면적이 넓어져 메모에 와서 붙는 메모거리가 많아지고, 메모끼리 연결되고 결합해 새로운 메모거리를 던져준다. 메모가 메모를 낳는 선순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밖에도 메모는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도구가 된다. 나는 내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들을 메모하면서 그 감정에서 벗어난다. 느끼기만 하는 감정은 왜곡되고 증폭되기 쉽지만, 글로 썼을 때 객관화되고 정화된다. 내가 한 일과 앞으로 할 일도 메모하면 이미 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 ‘불통(不通) 즉 통(痛)이요, 통(通) 즉 불통(不痛)이다’란 말이 나온다. 서로 통하면 아프지 아니하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어야 하고, 날숨이 있기 위해선 들숨이 있어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이고, 이런 이치에 순응할 때 우리는 건강하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는 순서가 없다. 들은 걸 쓰기도 하고, 쓴 것을 말하고, 말하기 위해 읽는다. 읽기와 듣기만 있고 말하기와 쓰기가 빈약한 때는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않는 불통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쓰기가 없는 읽기, 듣기는 허망했다. 말하기와 쓰기를 잘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읽기와 듣기가 말하기와 쓰기로 확장한 삶을 산다.

말하기와 쓰기도 연결됐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쓰기 가운데 어느 한쪽에 과도한 무게중심을 두고 산다. 주로 말만 하고 살거나 쓰기만 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말하기와 쓰기의 불통을 낳는다. 나는 말한 건 쓰고, 쓴 건 말한다. 말하기 위해 쓰고, 쓰기 위해 말한다. 말하기와 쓰기가 상부상조하고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일상을 산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의욕에 넘친다. 읽고 듣기만 하며 살 때보다 벌이도 낫다. 독자 여러분도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가 순환하는 삶, 말과 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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