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요양 중심 제도 한계… ‘생활 돌봄’ 사각지대 드러나

농촌 지역 노인 돌봄이 ‘제도는 있지만 삶은 비어 있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 중 절반 가량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기존 돌봄 체계의 사각지대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농촌 지역사회 주도 노인 돌봄 체계 형성 방안’에 따르면, 농촌 노인의 18.4%는 식사 준비나 이동, 가사활동 등 일상생활 수행에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그러나 이 가운데 47.2%는 공적·사적 돌봄을 모두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돌봄 체계의 구조다. 현재 노인 돌봄은 의료 서비스와 장기요양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병원 진료나 요양서비스는 제도권 안에 있지만, 정작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돌봄은 제도 밖에 머물러 있다. 보고서는 이를 ‘일상생활 돌봄의 미충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한다.
실제 농촌에서는 식사 준비, 장보기, 이동, 청소와 같은 기본 생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 적지 않다. 교통 인프라 부족과 지역 간 거리 문제, 돌봄 인력의 한계까지 겹치면서 도시보다 더 큰 생활 공백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노인 상당수가 사실상 ‘방치’에 놓이게 된다.
특히 공적 돌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각지대 노인이 문제로 떠오른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지 못했지만 일상생활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고령층이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삶을 지탱하는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 ‘돌봄의 단절’이 농촌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연구진은 ‘지역사회 주도 돌봄’을 제시했다. 주민 조직과 사회적 협동조합,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이 돌봄 필요를 발굴하고 자원 봉사와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생활 돌봄을 제공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정책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3월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 됐으며, ‘농촌경제사회서비스법’ 역시 지역 기반 돌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마련됐다. 공적 돌봄을 지역사회와 결합하는 ‘통합돌봄’ 체계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흐름이다.
연구진은 특히 읍·면 단위에서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주민 조직과 지방자치단체, 서비스 기관 간 협력 구조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재정 지원과 전문 인력 확보, 중간지원조직의 제도화 없이는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 구축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농촌의 돌봄 문제는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와 요양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삶’을 유지하는 ‘생활 돌봄’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제도가 아닌 생활을 중심에 둔 돌봄 체계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련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