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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번지 없는 주막을 찾아서

기사입력 2018-08-10 08:38

동년기자가 만난 People

청중은 젊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면서 박수쳤고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제2인생을 준비하는 은퇴자를 비롯해 교사, 시인, 사진작가 등 모인 사람들의 나이와 직업도 참 다양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들 앞에 선 강연자는 이동순(李東洵·68)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다. 시를 쓰는 문학인이라는데 옛 대중가요에 심취해 살다 보니 ‘대중음악 연구가’라는 이름표도 늘 따라다닌다.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로맨스그레이 이동순 대표는 강의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노래를 직접 들려주며 이해를 돕는다.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일깨우며 살고 있는 이동순 대표의 이야기를 동년기자가 직접 들어봤다.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사진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사진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6월 말 만난 이동순 대표는 ‘대중가요로 풀어보는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했다. 이야기경영연구소가 주최하고 서울미래유산과 서울시가 후원한 이 강좌는 서울미래유산(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현재 문화재 등록이 안 된 서울의 근현대 유·무형 유산) 중 하나인 대중가요를 통해 서울의 옛 모습과 현재를 이어 역사를 이해하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대중가요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가수의 인생 스토리는 물론이고 서울의 옛 거리도 슬라이드 사진으로 더해졌다. 이동순 대표가 맛깔나는 목소리로 직접 노래를 부르면, 청중도 따라 부르면서 시간여행을 하듯 추억 속으로 함께 잠겼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대중가요 사랑과 전파에 쏟는 열정은 국보급이다. 이동순 대표는 대구 계명문화대학교 평생교육원의 특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음껏 음반도 듣고, 노래도 부르며 힐링하는 곳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센터 이름을 지었다. 주 활동무대는 대구와 경상도 지역이지만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대중가요 연구가이기에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모시기 바쁘다. 지금까지 공연을 겸한 강연을 500회 넘게 한 것 같다고.

대중가요 사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동순 대표는 대학 졸업 무렵이던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를 쓰는 문인이자 학자로서 천재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의 시를 엮어 ‘백석시전집’(1987)을 발간했으며 ‘백석문학상’ 제정에도 큰 역할을 했다.

문학인의 삶 외에 특이한 이력 하나가 바로 ‘대중가요 연구가’라는 타이틀이다. 대중가요에 심취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동순 대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한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산달을 얼마 앞두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답니다. 피란도 못 가고 경북 김천 선산 가까이에 있는 초가에서 저를 낳으시곤 10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딸자식 둘은 계모 설움 안 받게 해 달라, 포대에 싸여 윗목에 누워 있는 어린 핏덩이는 곧 나를 따라올 테니 걱정 안 한다’는 유언을 남기셨답니다.”

유년 시절이 되니 어머니의 빈자리가 점점 커져갔다. 유난히 설움과 눈물이 많았고, 상처도 쉽게 받았다. 감수성 또한 섬세하고 예민했다. 이 시절의 성격이 시인이 되는 데 일조한 것 같다고 이동순 대표는 회고했다.

“전매청 창고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진공관 라디오를 켜놓고 ‘정오의 희망음악’이라는 방송을 듣곤 하셨어요. 이때 대중가요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그리고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같은 노래가 자주 흘러나왔어요. 여가수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엄마도 저런 목소리였을 거야’라며 상상하곤 했어요.”

라디오에서 여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빈 종이와 연필을 찾아 미친 듯이 가사를 옮겨 쓰기도 했다. 가사를 적으면 노래가 외워지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련함이 그를 대중가요에 점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중인 이동순 대표와 조미옥 동년기자(사진 손웅익 동년기자)
▲인터뷰 중인 이동순 대표와 조미옥 동년기자(사진 손웅익 동년기자)

음반 가득한 친구 집에서 자신을 발견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등하교를 같이하던 길목 친구가 있었다. 친구 어머니 방에는 탐나는 예쁜 전축과 함께 음반이 가득했다. 혼자 몸으로 철공소를 운영하던 친구 어머니는 술만 취하면 전축을 틀어놓고 흐느껴 울었다. 친구 어머니가 외출한 틈을 타 음반이 가득 꽂힌 방으로 들어갔던 어느 날, 온종일 노래를 들으며 대학노트 두 권에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노래 가사를 빼곡하게 써내려갔다.

“친구 집에서 기록했던 노래가 지금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어요. 한 480곡쯤 될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 내 대중가요 연구의 밑천이 되었어요. 가요 평론가로 가요 해설가로 또 노래를 부를 때도 당시 기억을 다 써먹고 있습니다.(웃음)”

학창 시절 그는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했다. 많은 노래를 알고 잘 부르기까지 하니 섭외 1순위가 당연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친구 집에 놀러갈 때 등 어디서든 칭찬받는 것이 좋아 능청스럽게 무대에 선 듯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마치 남자 기생이 된 거 같았어요.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랬습니다. 선임이 노래 부르게 하고 술 한 잔씩 따라주곤 했거든요. 그야말로 노래 사역을 한 셈이었어요.”

▲동년 기자들과 영상 인터뷰 녹화 중인 이동순 대표(사진 손웅익 동년기자)
▲동년 기자들과 영상 인터뷰 녹화 중인 이동순 대표(사진 손웅익 동년기자)

꿈을 포기하고 대중가요에 빠져들다

이동순 대표의 젊은 날 꿈은 방송인이었다. 대학 시절 방송반 활동을 쭉 했기에 당연히 기자나 라디오 PD쯤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사시험 신원조회에서 친척의 부역 기록이 발견됐다. 연좌제가 발목을 잡았다. 유년 시절부터 꿈꿨던 방송인의 꿈은 펼치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누구보다 빨리 국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아 27세의 젊은 나이에 경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 덕분에 고서와 음반도 사 모을 수 있었다. 천직처럼 느꼈던 대중가요 연구는 1980년대 충북대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노래를 살펴보니 일제강점기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등 문화예술인이 대부분 가사를 썼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가사가 굉장히 품위가 있고 훌륭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대중가요를 ‘뽕짝’ 혹은 ‘딴따라’라고 불렀습니다. 자기모멸적이고 비하하는 말을 많이 했어요. 딴따라는 두드리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거든요.”

당시 대중음악가들이 자해의식, 피해의식 등 상처가 많았다고 이동순 대표는 진단한다.

“대중음악가가 술집에서 서양음악을 하는 작곡가나 성악가를 만날 수도 있잖아요. 서양음악 가들은 대중음악을 음악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음악계에 반상계급 의식이 존재했는데 당연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제주JIBS TV 제주노래특집 프로그램(2016년)(이동순 대표 제공)
▲제주JIBS TV 제주노래특집 프로그램(2016년)(이동순 대표 제공)

번지 없는 주막, 대중가요 연구에 심취하다

이동순 대표는 대중가요를 ‘문화적 번지를 잃어버린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음악도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서양음악을 생각하면 답답했다. ‘가요’야말로 민족 예술이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도구인데 ‘왜 이렇게 천대를 받나!’ 하는 생각에 1981년 충북대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가요에 대한 에세이, 신문 칼럼, 논문을 수시로 썼다. 2001년 월간조선에 1년여 기고했던 옛 가요 관련 에세이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요 연구가로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갈 즈음, 대구MBC에서 연락이 왔다. 옛 가요를 중심으로 한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싶다고 했다.

“놀라운 소식이었어요. 속으로는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지요. 원래 방송인이 꿈이었으니까요. 기분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어떻게 진행하나 걱정이 앞섰어요.”

방송을 함께할 작가를 구해주기로 했으나 옛 노래에 대해 잘 아는 작가가 없었다. 결국 원고 준비에서부터 내레이션, 노래 선곡까지 이동순 대표 혼자 도맡아야 했다. 1인 방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했습니다.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주말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방송을 했어요. 나들이 갔다가 길이 막힐 때 라디오를 트는 황금시간대였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즐겁고 행복했죠. 무엇보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방송 진행을 마음껏 할 수 있었잖아요.”

자부심도 대단했다. 5년 동안 이어온 방송 진행으로 가요 연구가로서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지금은 전국에서 강연 초청이 물밀듯이 들어와 정신없다고. 청중에게 직접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아코디언도 배웠다. 악기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생겨나 색소폰, 장구는 물론 판소리할 때 쓰는 소리북과 거문고 등도 익혔다.

“삶이 어떻게 보면 단조로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만질 수 있는 악기가 늘어나니까 아주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이걸로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흥이 절로 납니다. 지금은 강연 반, 공연 반 이렇게 합니다.(웃음)”

악기를 배우고 보니 재능을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쓰고 싶었다. 경산에 있는 한 요양원을 찾아가 치매 노인들에게 옛 노래를 들려주곤 한다고.

“요양원 직원들이 제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치매 노인들을 미리 홀에 모아 앉혀놓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목석처럼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노인들을 위해 연주해요. 그런데 신기해요. 10분, 20분이 지나면,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고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거든요.”

그들의 잠자는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때 전율이 일어난다고 했다.

▲경북 칠곡도서관 주최 인문학 특강에서의 색소폰 연주(이동순 대표 제공)
▲경북 칠곡도서관 주최 인문학 특강에서의 색소폰 연주(이동순 대표 제공)

떠돌이 유랑가수로 대중의 마음을 치유하다

노래방 가사책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이동순 대표. 스스로를 걸어 다니는 노래방 가사책이라고 자부하는 만큼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생일대의 결투가 있다. 바로 김지하 시인과의 대중가요 부르기 대결이다. 김지하 시인은 가왕(歌王) 조용필도 꺾은 문단계 노래 지존으로 불렸다. 술만 마시면 혼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불러댔다. 보다 못한 김지하의 후배가 “청주 시골뜨기가 더 노래를 잘 부른다”고 놀리자, 김지하는 “그런 놈은 우리가 꺾어야지” 하면서 대결을 신청했다. 배심원도 배석할 정도로 큰 대결이었다.

“같은 노래도 안 되고 상대방이 부른 노래도 부를 수 없고 별별 규칙을 다 만들어 노래 대결을 했습니다. 밤 9시에 시작했는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도 안 끝났어요. 김지하 씨가 ‘아이고, 저렇게 징그러운 놈은 처음 보네. 이런 끔찍한 짓은 다시는 안 할란다!’ 하면서 항복했습니다.”

배심원 중 한 명인 김성동 소설가가 이 일화를 이동순 대표가 1987년에 출간한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은’ 발문에 쓰면서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이 대결은 이동순 대표가 대중음악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이동순 대표는 많은 노래를 알고 있고 잘 부르지만 특히 고운봉의 ‘명동 부르스’와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를 즐겨 부른다. 자신의 음색과 정서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가슴에 사무치는 노래는 역시 이화자의 ‘어머님 전상서’, 백련설의 ‘어머님 사랑’, 현인의 ‘비나리는 고모령’ 등이다. 어머니와 관련한 노래나 글자가 나오면 눈물이 핑 돈다.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학자의 길을 걷지 않고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고 함경도나 만주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유랑극단 악사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는 이동순 대표. 스스로를 옛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떠돌이 유랑 가수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 옛 노래를 섬세한 감수성과 예리한 시각으로 재발견하는 대중가요 연구가. 이동순 대표의 따스한 미소와 온화한 모습 뒤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중가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혜안이 숨겨져 있다.

▲이야기경영연구소 주최로 열린 ‘대중가요로 들어보는 서울미래유산’ 강좌(2018)(이동순 대표 제공)
▲이야기경영연구소 주최로 열린 ‘대중가요로 들어보는 서울미래유산’ 강좌(2018)(이동순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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