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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부부 관계 재설정

기사입력 2018-03-13 16:14

▲부부 관계 재설정(박종섭 동년기자)
▲부부 관계 재설정(박종섭 동년기자)
남자들이 퇴직 하면서 꾸는 꿈이 있다. 그동안 일벌레처럼 직장에 충성하며 소홀히 했던 가정에 이제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거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별을 보고 퇴근하느라 아내에게도 자녀들에게도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인생은 적어도 아내에게만은 그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아내와 많은 시간도 갖고 시장도 보고 여행도 하면서 지내려는 소박한 꿈을 갖는다. 그 소박한 꿈이 소원대로 이루어질까?

얼마 전 교육공무원인 남편을 둔 어느 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 있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끝까지 다니라 했는데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 있다면 숨이 막혀 버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편의 명예퇴직 신청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퇴직이 3년 더 남았지만 남은 월급도 미리 다 받게 되고 연금법이 바뀌면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명퇴금도 받고 금전적으로도 손해 볼 것도 아니고, 이제 더 있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학교가 옛날처럼 선생님들의 권위가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다루기도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힘들고, 옆에서 너도나도 명퇴한다고 하는데 자신만 버티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고도 했다.

남편의 논리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닥칠 환경의 변화를 부인이 받아들이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이제 자기 나름대로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미리부터 다른 환경에 적응하려니 달갑지 않은 것이다. 부인은 나름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다. 취미 활동도 열심이고 친구들과 모임도 많았다. 언제든지 갈 데가 있었고 자유롭게 다녔다.

남편은 밥상 한 번 차리는 법이 없었다. 오직 차려주는 것만 먹을 줄 알았다. 남자는 밖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배운 권위적인 집안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부엌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도 그 집안의 가풍이었다. 여행을 가면 늘 부부가 싸웠다고 했다. 가족 넷이 주로 다녔는데 아마 둘이 가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러니 부인은 남편의 퇴직이 두려운 것이다. 이 상황을 어찌 정리해야 할까?

요즘은 부부의 위기 시대라고도 한다. 평균 수명도 길어져 앞으로 살날도 많은데 부부가 이렇게 달라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미리부터 함께 지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서로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남편은 퇴직했다고 아내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취미 활동 등을 통해 이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의 부부생활은 ‘따로 또 같이’라는 관계설정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동안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천천히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는 인정도 중요하다. 일해 왔던 사람들은 그렇게 놀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심심해서 죽는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평생 몸에 일하는 유전자가 형성되어 있는데 꼼짝 않고 있는 것이 더 고역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오리려 좀 쉬라고 위로해 주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부부간의 공동취미 생활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탁구나 배드민턴같이 쉽게 할 수 있는 운동도 좋고 등산도 좋다. 영화를 함께 보거나 음악회를 찾아 문화 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퇴직 후에도 몇십 년을 함께 살아야 한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가끔은 출구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안전하게 제2의 삶을 위해 안착하는 일이다.

아내도 남편도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내가 해왔던 생활을 존중하면서 나 자신의 삶도 사는 ‘따로 또 같이’하는 삶이다.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노후를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기에는 부부 서로 간의 이해와 관심과 미리 함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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