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로해준 트로트] 민요에서 K-팝까지, 어느 시대의 트로트를 사랑하시나요?

트로트는 낯설지 않은 음악이다.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를 부르고, 공연장에는 수만 명의 관객이 모인다. 중장년 세대뿐 아니라 젊은 층까지 함께 즐기는 음악이 됐다. 한국 대중음악의 긴 역사와 흐름을 따라 올라가면 전통 민요에서 근대 유행가, 그리고 현대 대중음악까지 이어지는 길 위에 트로트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버팀목, 트로트
부산 동래구 온천장 인근에서 작은 곰장어 가게를 운영하는 김옥자 씨의 하루는 트로트로 시작해 트로트로 끝난다. 가게 한쪽에 놓인 오래된 TV에서는 하루 종일 트로트 프로그램이 나온다. 요일마다 어느 채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지 빠짐없이 외우고 있는 그다.
김 씨에게 트로트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손님이 모두 끊긴 텅 빈 가게에서 그를 버티게 한 힘이 바로 트로트다. 특히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매주 기다렸다. 여러 출연진 가운데 임영웅은 김 씨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다.
“임영웅은 만 번도 넘게 봤지!”
그는 본방송을 보고, 재방송도 보고, 재방송의 재방송까지 찾아보며 하루를 보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가 없었다면 진작 가게를 정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그는 여러 방송사 채널을 오가며 트로트 프로그램을 찾아본다. 최근 인기 있거나 화제가 된 트로트 가수들의 삶과 사연, 심지어 팬덤의 특징까지 줄줄이 이야기할 정도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찾아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 오로지 TV로만 트로트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는데도 내공이 깊다.
최근 종영한 ‘미스트롯4’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2위를 한 허찬미도 노래를 참 잘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소나의 가정사를 듣고 응원하는 마음이 커서 1등으로 뽑았을 거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정이 많다.”
그 역시 애잔한 사연이 있는 가수들을 더 기억하고 응원한다. 트로트는 김 씨 같은 중장년에게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삶의 이야기이고, 시대의 기억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문화다. 그렇다면 이 음악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민요에서 유행가로, 근대 대중음악의 탄생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불려온 노래 문화의 중심에는 민요가 있었다. 민요는 특정 작곡가나 가수가 만든 노래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전해진 노래였다. 농사일을 하며 부르던 노동요, 의례나 놀이 속에서 불리던 노래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졌다.
그러나 20세기 초 음악의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음반산업이 등장하고 극장과 공연장이 생기면서 노래는 공동체의 문화에서 대중이 소비하는 문화산업으로 변화했다. 민요의 토양 위에 유행가·신민요·번안곡 등이 공존했고, 그 흐름 속에서 트로트로 이어지는 양식이 형성됐다. 이 시기 노래는 전통 민요의 선율, 서구 음악의 리듬,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음악 양식이 함께 섞인 형태였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유행가’였다.
유행가는 작곡가와 가수가 만들어 음반으로 발표하고 대중에게 널리 퍼지는 노래를 의미한다. 오늘날 대중가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930~40년대에는 이러한 유행가가 도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애수의 소야곡’, 현인의 ‘신라의 달밤’ 같은 노래가 큰 인기를 얻으며 전국으로 퍼졌다. 작곡가 손목인은 ‘타향살이’, ‘아내의 노래’ 등을 발표하며 당시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개항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 문화가 빠르게 퍼졌다. 목포·부산 같은 항구도시는 만남과 헤어짐의 정서적 무대이자, 유성기 음반과 공연 문화가 일찍 자리 잡은 공간이었다. 이런 도시 문화 속에서 근대 대중가요가 확산되며 이후 트로트로 이어지는 음악 양식을 형성했다.

리듬과 창법으로 보는 트로트의 특징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트로트가 정확히 어떤 음악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의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대중가요가 섞이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다만 음악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통해 트로트를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특징은 리듬이다. 트로트는 흔히 ‘뽕짝’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리듬 구조를 가진다. 기본적으로 2박자 계열(2/4, 4/4)의 리듬 위에서 ‘쿵짝 쿵짝’ 하는 반복적인 박자가 이어진다. 이러한 리듬은 춤을 추기 쉽고 대중이 따라 부르기에도 편한 구조를 만든다. 이외에도 3박자, 4박자, 디스코·왈츠 계열 리듬까지 시대에 따라 폭넓게 변주돼왔다.
두 번째 특징은 창법이다. 트로트 가수들은 음을 곧게 내기보다 ‘꺾어 부르는’ 방식으로 노래한다.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미끄러지듯 넘어가는 창법은 트로트 특유의 애절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창법은 한국 민요의 표현 방식과도 닮았다는 분석이 많다.
세 번째 특징은 정서다. 트로트 가사에는 사랑과 이별, 고향과 가족, 인생의 굴곡 같은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화려한 메시지보다 일상적인 감정을 담는 경우가 많아 중장년 세대에게 깊은 공감을 준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을 바탕으로, 트로트는 시대마다 편곡과 스타일을 바꾸며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해왔다. 최근 젊은 가수들은 더욱 과감하게 다른 장르와 스타일을 결합해 또 다른 트로트의 장르를 써 내려가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장르, 트로트의 변화
트로트는 흔히 ‘옛 노래’로 여기지만 끊임없이 변화해온 음악이다. 1960~70년대에는 이미자·남진·나훈아 같은 가수가 등장하며 성인가요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이 시기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 장르였다. 방송과 음반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전국의 다방과 극장, 유흥가에서도 널리 불렸다.
1980~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은 발라드와 댄스 음악으로 이동했다. 젊은 세대의 취향이 변하면서 트로트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발라드와 댄스 음악이 중심이 된 뒤에도 트로트는 완전히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KBS ‘가요무대’와 ‘가요톱10’ 같은 방송 무대에서 꾸준히 호출되며 장르의 존재감을 이어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트로트는 또 한 번 얼굴을 바꿨다. 현철의 ‘봉선화 연정’,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와 ‘신사동 그 사람’, 태진아의 ‘옥경이’, 김수희의 ‘남행열차’, 송대관의 ‘정 때문에’ 같은 곡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트로트는 다시 대중의 귀를 붙잡았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트로트는 과거의 짙은 신파성과 한의 정서에서 조금씩 벗어나 흥·사랑·만남과 이별 같은 좀 더 생활적인 감정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트로트는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리듬과 편곡이 현대적으로 바뀌었고, 다른 장르와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도 등장했다. 전통적인 트로트 창법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음악적 요소를 받아들이며 장르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다시 트로트! 세대와 산업이 만든 부흥
최근 몇 년 사이 트로트는 다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트로트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2019년 ‘미스트롯’에서는 송가인·정미애·홍자가 진·선·미로 뽑혔다. 특히 송가인은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 ‘미스터트롯’에서는 임영웅·영탁·이찬원 같은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이후 트로트 콘서트 관객 수와 스트리밍 이용자 수, 트로트 프로그램 시청률 등 관련 콘텐츠 소비도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복고 현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장년 세대의 문화 소비력이 커졌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과거의 노래가 다시 유통되면서 새로운 청중이 등장했다.
김옥자 씨 같은 사람들에게 트로트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노래 속에 담긴 사랑과 이별, 가족과 인생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로트의 부흥은 옛 음악이 다시 유행하는 현상 그 이상이다. 세대의 기억과 문화산업,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함께 만들어낸 변화다.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의 오랜 갈래 가운데 하나다. 전통 민요에서 시작된 노래 문화가 근대 도시의 유행가를 거쳐 오늘날의 대중음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트로트는 한국 음악사의 중요한 한 줄기를 이루며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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