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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石頭)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이의 영리한 농사에 대해

입력 2026-01-22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충남 청양군 비봉면 산골에 사는 석두환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여긴 칠갑산과 청양고추로 유명한 청양군의 외진 산촌이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의 반은 하늘이 차지한다. 나머지 반은 산야다. 올해로 귀농 10년 차에 이른 석두환(67, ‘하니수니블루베리’) 부부가 사는 마을이다. 순한 눈빛을 지닌 강아지 세 마리와 애교덩어리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산다. 군식구는 더 있다. 농장에서 자라는 블루베리들이 바로 그렇다.

석두환이 단연 애지중지하는 ‘자식’은 블루베리다. 잠을 자는 시간 외엔 하루의 대부분을 농장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게 아닌가. 겨울철도 예외가 아니란다. 요컨대 남달리 부지런한 농부다. 블루베리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에 이골이 난 그는 신바람이랄까, 삼매경이랄까, 일종의 희열을 느끼며 블루베리 농사에 심취해 산다. 마치 풍진 세상을 똑똑하게 건너는 비결이 오직 농사에 있다는 투로. 또는 주옥같은 작품을 쓰기 위해 골방에 박혀 영혼을 쥐어짜는 시인처럼. 그러니 실적이 좋을 수밖에. 그는 청양군 관내 블루베리 농가 중 우월한 수익을 내는 선진농업인 그룹에 속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시골에 입문하는 귀농인의 유형엔 두 가지가 있다. 사전 준비를 야무지게 하고 내려오는 경우, 그리고 돈키호테처럼 생뚱맞은 충동에 이끌린 별 준비 없는 귀농으로 나뉜다. 석두환은 전자의 귀감이다. 준비의 충실성 여부가 농사의 판세를 가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종의 공리(共理)지만, 그는 충실을 초과하는 수준의 막강한 대비를 했다. 매우 인상적인 대목이다. 성격 자체가 뭐든 시작하면 철저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농촌에 안착하기 위해선 우선 공부가 필요하다고 봤다. 맨 처음엔 여주시에 있는 귀촌귀농대학에 적을 두고 1년 과정을 수료했다. 거주지인 서울에서 다소 먼 곳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후 고양시에 있는 귀농대학에서 배웠다. 무주군에서도 한동안 머물며 배웠고, 농촌 실정을 파악하고 귀농지와 작물을 선정하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전국 곳곳의 농촌을 숱하게 견학하기도 했다. 청양에서도 귀농학교를 통해 다시 공부했다. 그건 청양으로 귀농한 계기가 됐다. 돌아보면 나름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한 덕분에 10년 세월 내내 무난한 농사가 가능했던 것 같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농가 천장에선 쥐들이 우글거렸고

석두환은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 젊을 적엔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후 KT에서 전무직까지 지낸 뒤 명퇴하고 귀농했다.


은퇴 뒤엔 일보다 자유를 만끽하는 게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왜 아니겠나. 한동안 그냥 놀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취미였던 스크린골프, 바둑, 볼링 같은 걸 즐기며 태평하게 지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진력이 나더라. ‘아이고, 이렇게 날마다 노는 것도 쉬운 게 아니네! 별 재미가 없잖아!’ 넋두리가 저절로 나왔던 거다.”


취미를 참신하게 개발하다 보면 싫증을 물리칠 흥미가 붙을 텐데? 그 역시 이상적인 인생 2막을 위한 도전일지도 모르고.

“날마다 빈둥거리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상적이지도 않고. 더구나 직장 일에 매진하며 살았던 관성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게 창업이었다. 치킨집, 빵집, 호프집, 신발가게, 스크린골프장 등을 놓고 궁리를 해봤다. 그러나 장사라는 게 규모화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접었다. 그즈음 꽂힌 게 귀농이었다.”


농사로 방향을 정한 연유는?

“서울에서 아파트 인근의 텃밭을 빌려 20여 가지 채소류를 재배한 수년간의 경험이 농사를 결심하게 했다.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탐스럽게 자라는 상추며 고추 등이 안겨주는 즐거움, 흙의 풋풋한 냄새와 촉감이 주는 신선감 같은 게 농사에 호감을 갖게 했다. 주말 텃밭농사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귀농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대부분 아내들은 귀농에 부정적인데 부인은 어땠나?

“묵시적인 인정을 했다. ‘뜻이 그러하다면 알아서 해보라. 대신 난 상황을 보고 나중에 따라가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정도의 태도를 취했으니까. 그걸 승인 사인으로 보고 일단 홀로 귀농했다. 그런데 딱 2개월 만에 고맙게도 아내가 합류했다. 남편이 산골에서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추레하게 지내는 꼴을 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석두환은 매물로 나온 800평(약 2645㎡)짜리 블루베리밭을 매입하는 것으로 농사의 서장을 열었다. 밭 옆에 있던 ‘다 쓰러져가는 농가주택’도 사들여 거처로 삼았다. 매매계약을 할 땐 미처 파악하지 못한 양돈장이 인근에 있는 등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여건이었다. 하지만 신참 농부 특유의 의욕과 투지를 불사르며 일을 밀어붙였다.

“블루베리에 관한 사전 교육을 통해 얻은 정보와 이해가 있어 농사에 어려움은 별로 겪지 않았다. 그러나 거처의 환경이 열악해 이모저모 불편이 많았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아내가 제일 질색한 건 천장에 우글거리는 쥐들이었다. 쥐떼가 펼치는 밤의 무도회였다.(웃음)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요란했으니까. 결국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마침 인근에 매물로 나온 임야가 있어 사들인 뒤, 첫 번째 거주지 밭에 있던 블루베리나무를 옮겨 2500평(약 8264㎡) 규모의 농장을 새로 조성했다. 2층짜리 주택도 신축했다. 농장 일대에 토목공사를 해 통행로도 정비했다. 비로소 농촌 생활의 기초가 마련된 셈이었다.”


집짓기는 업자에게 맡겼나?

“직영을 선택해 지었지만 진땀깨나 흘렸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생을 한 것이다. 집이 완성될 즈음엔 머리칼이 백발로 바뀔 정도였다.(웃음) 반면 배운 게 많았기 때문에 크게 보면 손실 난 건 없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얻을 건 이미 다 얻어

귀농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간 농사를 제대로 일으켜 남들이 알아주는 강소농 대열에 올라섰다. 연간 소득은 얼마나 되나?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뿐 딱히 내세울 건 없다. 그저 블루베리 농사를 잘하는 축에 드는 농부라고 보면 된다. 2025년 매출은 약 1억 원이다. 외부 인력을 쓰지 않고 부부 협업만으로 거둔 매출치고는 높은 편이다. 순수익은 매출의 65~70% 정도다."


누군가 귀농해 블루베리 농사를 하고자 할 경우엔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귀농 교육기관의 요청으로 가끔 강의를 한다. 그때 예비 귀농인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귀농은 물론이고 작물 선정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하고 결정하라.’ 낭만적인 감정에 이끌린 귀농이나 섣부른 작물 선택은 금물이라는 거다. 블루베리가 다른 작물에 비해 농사짓기 수월하고 채산성도 좋은 편이라는 얘기도 해준다.”


블루베리 농사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굵고 튼실한 열매를 생산하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빈번하고 노련한 전지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전지에 서툴면 상품성 떨어지는 자잘한 알들이 달리기 때문이다. 적시에 물을 공급하고, 양질의 퇴비를 발굴해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 작물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능력도 믿을 만한 영양소 공급 못지않게 요긴한 거라고 본다.”


블루베리와 대화를 한다?

“자식을 돌보듯 작물에 무한한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가령 난 농장에 음악을 틀어 나무들의 기분을 살려준다. 비 오는 날엔 촉촉한 발라드를, 햇살 좋은 날엔 신나는 트로트를 틀어준다. 귀 없는 나무에게 노래가 들릴 리 없지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메시지를 음악에 실어 전해보는 것이다. 이럴 때면 나무와 뭔가 대화가 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농사의 재미를 실감하게 된다.”


직장에서 얻은 경륜을 십분 활용해 농사를 지을 텐데, 농업을 여느 농부와 다르게 보는 관점이 있다면?

“농사도 엄연한 경영이라는 것, 과학적 영농을 하자는 것, 끊임없이 연구하자는 정도의 수칙을 가지고 산다. 이런 기본 방책을 실행할 경우엔, 이를테면 흔히 고심하는 유통 문제도 어렵잖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농장엔 현재 400여 명의 고정고객이 확보돼 있다. 쿠팡이나 네이버스토어를 통한 판매 물량도 많다. 수년 전부턴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판로는 얼마든지 널려 있단 얘기다. 다만 흔히들 적극적으로 개척하지 않을 따름이다. 좀 더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하고, 좀 더 부지런히 뛰면 얼마든지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게 농업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석두환에겐 좌우명이 있다. ‘얻으려면 뛰어라!’ 매사 치열하게 뛰어야 비상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한다. 삶의 경기장인 세상에서 누군들 뛰지 않으랴. 그러나 그는 남들보다 더 뜨겁게 뛴다. 더 옹골차게 뛰어 인생길에서 만나게 마련인 운명의 훼방을 따돌린다. “아 귀농하기를 참 잘했어!” 그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얘기가 그렇다. 농사로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한 한편, 삶의 질을 향상한 자신의 노력과 실력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그가 자평하는 귀농 안착의 비결은 두 가지다. 농업에 관한 끊임없는 공부, 그리고 불굴의 근성을 요인으로 꼽는다.

“자랑 같아 외람되지만 내게 굳은 의지 하나는 확실하게 있다. 타고난 것이라기보다 후천적으로 얻은 것이다. 학창시절 석두환이라는 이름보다 ‘석두(石頭)’라는 별명으로 불렸다.(웃음) 상처가 엄청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독한 맘을 먹고 똘똘하고 단단해지기 위해 매사 노력하며 살았는데, 그게 하나의 기질로 정착된 것 같다. 별명이 나를 키운 꼴이다.”


농사 부문 외 시골 생활에 관한 만족도는 어느 수준일까? 애환도 많을 텐데.

“한동안 일부 배타적인 원주민들의 편견과 괄시에 괴로웠다. 충돌도 당연히 있었고. 그러나 농촌 특유의 보수성을 감안해 ‘그러려니’ 하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극복했다. 나 자신의 급한 성격과 입바른 소리 툭툭 하는 버릇을 고치는 쪽으로 노력하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요즘의 일상은 매우 만족스럽다. 지속 가능한 농사를 하고 있고, 도시에서 짊어지고 살았던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만도 어딘가. 부부 여행 같은 낭만을 즐길 겨를은 없지만, 짬짬이 지역의 문화공간을 드나들며 갖가지 취미 활동을 해 여가 생활의 갈증을 채우기도 한다.”


부인은 시골살이에 잘 적응했나?

“초기엔 고생했지만 신속하게 적응해 활달하게 지내고 있다. 봉사활동 같은 일에도 앞장선다. 그런 아내에게 많이 배우며 산다. 내가 잔소리가 많은 편이지만 다 포용해줘 고마운 정을 새삼 느끼기도 하고. 그런데 그 사람은 남편보다 강아지들을 더 사랑한다. 이게 말이 되나?”(웃음)


윽! 반려견의 친절과 충성심을 능가할 남편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석두환이 강아지들을 젖힐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귀농을 통해 얻을 건 이미 다 얻었다고 자부한다.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이다.


석두환이 주는 귀농 Tip

•농사로 돈 벌기 어렵다며 귀농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지만 각자 하기 나름이다. 부지런하다면 실패할 일이 거의 없다. 부지런히 농장에서 뛰어도 부진을 면하기 어렵다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부지런하게, 비지땀을 더 흘리면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다.

•자금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의욕만 앞세워 결행하는 귀농은 무모하다. 어떤 작물에 도전하든 3억~4억 원 정도의 자금은 지니고 내려가야 한다. 자금력이 부족하다면 아예 귀농을 포기하는 게 낫다. 농사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거니와 주민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농촌에 살기 위해선 농촌 사람이 돼야 한다. 큰 집과 외제 차를 소유하고 과시적인 처신을 할 경우엔 위화감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소형 트럭 하나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게 농촌이다.

•블루베리를 비롯한 과수 농사를 하려면 최소 1000여 평(약 3306㎡) 규모의 농장을 꾸리자. 그 이하일 땐 소득이 너무 적게 나와 무의미하다. 1000평 정도면 부부의 노동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며, 연간 3000만 원쯤의 순소득을 거둘 수 있다. 물론 충실한 협업 내지는 분업 체계가 돌아가야 가능한 얘기다.

•귀농지를 확정하기 전에 마을 주민과 교제를 하자. 이장과 사귀는 게 가장 좋다. 농토 마련이나 농촌 생활의 제반 문제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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