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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엽기적 사건들을 보면서

기사입력 2019-06-18 14:51

엽기적인 사건들이 줄을 잇따르고 있다. 일명 ‘어금니 아빠’의 딸 친구 살해 사건. 젊은 부부가 갓 태어난 자식을 굶겨 죽이고 이어 태연히 시체를 유기한 사건. 젊은 여인의 전남편 살인사건.

그 중에서도 전남편을 살해한 젊은 여인이 특히 눈을 끈다. 언론에 얼굴이 공개된 그 여인의 표정을 보면 살기라곤 전혀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이어서 더욱 섬뜩하다. 주변에서도 그녀는 평소 평범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전한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악의 얼굴은 실제가 아닐 수 있다. 영화에 무시무시하게 등장하는 마동석을 보며 그에게 편견을 가질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에선 마블리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스러운 모습이라지 않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는 악의 이미지는 미디어 등에서 주입한 편견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다정다감한 악의 모습은 의외라서 더욱 소름 끼치게 한다.

‘악의 평범성’을 실감나게 묘사한 글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들 수 있다. 아렌트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로 히틀러 정권 출현 후 반나치 운동을 벌이다가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그녀는 1960년 나치 친위대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체포되자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하고 이 글을 썼다. 이때 제시한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아이히만이 체포될 당시 사람들은 그가 포악한 성정을 보여주는 모습의 악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를 검진한 정신과 의사들도 아이히만이 매우 ‘정상’이어서 오히려 자신들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월급만큼 일을 못할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평범한 인간의 내면에 들어있는 악의 본성을 드러내어 충격을 준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교도소 실험’도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도 유명한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심리학 실험이다. 1971년에 시행된 이 실험은 아직도 고전적인 성과로 남아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피실험자를 둘로 나눠 교도관과 죄수라는 역할을 준 뒤 그들의 심리와 행동의 변화를 추적한 것이다.

실험의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끔찍한 것이었다. 무작위로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 역할극에 몰입하면서 내면의 잔인성이 드러난 것이다. 2주로 예정된 실험이 5일 만에 끝날 정도로 인간의 폭력성은 심각했다. 그렇다면 악은 특정한 사람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보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익명성 속에 숨어 갖은 악플을 일삼는 범인들을 잡고 보니 초, 중등 학생들이라지 않는가.

그러나 악이 인간의 보편성이라면 선도 또한 보편성일 것이다. 그래야 균형 잡힌 사회가 가능하고 인류 문명이 지속되는 것일 터이니. 본디 자연 상태의 본질이 악이라면 야만 상태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문명이 선의 영역을 유지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부단한 수양으로 마음속의 악을 누르고 선을 지향하는 노력 없이는 어느새 마음 밭은 악의 잡초로 우거질 것이다.

요즘 딸의 권고로 BTS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 관찰하니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힘의 본질이 선한 기운이 아닌가 한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지구 반대편의 평범한 소녀의 삶을 바꾸는 모습이 신선하고 기특하다. 어쩌면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모두 이런 선한 기운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격려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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