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1월 마지막 주 토요일, 추위가 좀 누그러진 것 같아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에 나갔다. 이곳에는 수많은 소극장이 있는데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어디에 무슨 극장이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됐다. 관람 작품은 ‘풍월주’. 신라시대의 스토리를 무대에 올린 픽션 창작극이다.
마로니에 공원길을 따라 유니플렉스 소극장을 찾았다. 몇 번 연극을 보러왔던 장소라 낯이 익다. 좌석 이름을 부이석이라 표현했는데 아마도 VIP석을 예스럽게 말한 듯 보였다. 1층 8열, 작품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자리였다.
연극이나 뮤지컬에 따라 사진을 허용하거나 제한하기도 하는데 ‘풍월주’는 막이 오른 뒤부터 커튼콜까지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고 했다. 보통은 커튼콜을 할 때 사진 촬영 정도는 허락하는데 이 작품은 촬영이 금지됐다. 아쉽게 로비에 마련된 포토존과 시작 전의 무대를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배우들이 등장했는데 의상이 좀 이상했다. 신라시대의 전통 의상을 예상했는데 다들 코트를 입고 있어 의아했다. 성의가 없어 보였지만 의상보다는 이야기에 공을 들였을 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풍월주는 창작 뮤지컬로 벌써 네 번째 시즌 공연을 맞이했다. 그만큼 관객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시원하면서도 애절한 배우들의 노래가 감성을 자극했다. 풍월주는 신라시대 때 화랑의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인데 이후 화랑도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게 됐을 때 각 갈래의 우두머리를 칭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남자 기생 풍월들에 관한 이야기다. 귀부인이나 높은 신분의 여인들을 상대하는 남자들이 모인 ‘운루’. 각각의 사연으로 이곳에서 지내는 그들을 바람과 달의 주인인 의미로 풍월주라 불렀다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열’은 풍월주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다.
핏빛 개혁의 중심에 선 진성여왕은 부귀영화를 약속할 정도로 ‘열’을 사랑하지만 그는 운루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사담’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열’이 궁으로 들어오라는 여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진성여왕은 사담을 찾아가 자결할 것을 명한다. 정인의 마음을 얼마나 얻고 싶으면 저렇게까지 할까? 진성여왕의 악마 같은 행동이 미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잘되겠냐?”고 절규하는 사담과 “네가 죽으면 모든 것이 잘될 거다”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진성여왕의 이중창이 너무나 애절해서 눈물까지 났다. 결국 사담은 절벽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진성여왕은 끝내 ‘열’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뮤지컬 배우들은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할까? 몽환적인 무대 분위기와 이색적인 소재의 뮤지컬이 마음을 울렸고 다양한 레퍼토리가 신비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