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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파리 경찰의 연락을 기다린다

기사입력 2018-12-03 17:06

(이현숙 동년기자 제공)
(이현숙 동년기자 제공)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를 가기 위해서는 로마나 파리를 경유해야 한다. 나는 그중에서 파리 경유를 선택했다. 나만의 이유가 있다. 아주 오래 전의 파리 여행을 했을 때는 어린 두 아들을 챙기며 사진 찍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 생각이 깃든 파리 사진이 얼마 없다. 이번엔 잠깐이지만 파리 사진을 많이 찍어보고 싶었다. 카메라 배터리와 메모리 카드도 여유 있게 더 준비했다. 늘 간단히 하나 들고 나섰던 카메라에 이번엔 렌즈도 하나 더 넣었다.

그날따라 파리 드골 공항에선 공연히 분주했다. 트렁크 속의 카메라 가방을 꺼내어 따로 메고 가려했지만 어쩐지 공항의 심란한 상황으로 그럴 틈이 안 생겼다. 마음이 분주하다 보니 진땀나고 정신도 없었다. 이날따라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여행자의 줄도 길어서 지쳐버렸다. 소르본느 대학 근처에 예약해둔 숙소에 가서 어서 빨리 짐을 풀어놓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드골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RER기차의 B노선은 문이 활짝 열린 채 출발지의 여유를 보여준다. 이 여유로움이 문제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긴 비행시간과 입국절차의 피로가 방심을 만들었을까.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가끔 이때를 생각해 본다.

파리의 도둑놈은 재빨랐다

도둑을 도둑님이라 할 수도 없고 도둑이라고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럴 때 마음 놓고 '놈'자를 써 보고 싶다. 기차에 올라 트렁크를 내 자리 옆에 놓고 출발시간이 얼마나 남은 건지 휴대폰 시계를 잠깐 보며 한숨을 돌리는 시간이 불과 10초나 20초 정도였을 것이다. 내 옆에 있던 트렁크가 순간 없어졌다. 어? 둘러보아도 없다. 내 비명에 모르는 주변 사람들도 일어나 친절하게 이쪽저쪽 찾아봐 준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출발 전 기차에서 얼른 내렸다. 그리고 무전기 들고 오가는 공항직원에게 말했더니 안내데스크에 우릴 데려다 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게 하는 그들의 무심함에 화가 치밀어 직접 물어물어 미로 찾듯 공항경찰을 찾아갔다. 이때쯤 난 가방 찾기가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냥 맥없이 포기하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와 상관없이 파리 사람들의 이런 짓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분노와 멍청함으로 온전치 않은 정신의 내게 친절히 길안내를 해준 지나던 멋진 조종사와 젊고 착한 어느 공항직원이 그나마 미쳐버릴 것 같았던 나를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육중한 철문의 공항 경찰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연결해줘야만 하는 또 다른 공항직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겁 없이 공항 경찰서에 들어가니 건장한 흑인 경찰이 우릴 맞는다. 경찰복으로 무장한 그 모습에 조금 두려움이 생겼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이미 피곤하고 지쳤다. 정수기가 보이기에 물 좀 먹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직접 한 잔 받아다 준다. 친절하군...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제부터는 정식 절차에 따라 분실 신고를 하면 된다. 말도 안 통하는데 어째야 하나 막막했지만 영어를 그런대로 받아주어 남편이 한참을 설명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조금 있더니 전화를 받아보라고 한다. 한국인 여자 불어 통역사였다. 세계 각국의 통역 장치가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파리 경찰과 통역사를 중간에 두고 자초지종을 모두 이야기했고 연락처와 연결방법 등을 남겼다. 전화를 끊기 전 그 통역사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런데요... 크게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기 때문에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서요." 아무튼 파리 공항경찰에서 마음껏 한국말을 할 수 있게 해 준 그녀가 무조건 고마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경찰은 그것을 한 시간 정도 서류화 하느라 바빴고 우린 기다려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서야 끝이 났다.

공항열차를 타러 밖에 나오니 캄캄했다

기진맥진했지만 분풀이하듯 공항경찰에 모든 걸 털어내고 나서 그런지 시원했다. ‘까짓 가방 하나 잃어버릴 수도 있지 뭐, 살다 보면 별별 일 다 있는데 여행 중에 이런 일 정도 해프닝이라 해 두자...’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호텔에서 잠들라치면 속이 뒤집히며 화병을 일으키듯 속상하기를 몇 번이었지만 이런 여행도 해 본다 하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참아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여권이나 여행에 필요한 중요물품은 모두 남편 가방에 있었다. 오직 내 가방만 분실했기에 여행에 큰 지장은 없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잊어버리라 누누이 말한다. 하지만 내 옷가지와 필요물품 정도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만 카메라 관련 일체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가끔 유럽 여행 중에 생기는 도난방지 꿀팁이라거나 소매치기 체험기를 듣곤 했다. 그러나 나는 무심히 다녀도 그런 일은 여태 한 번 일어나지 않았다고 잘난 척했다가 이렇게 크게 당한 꼴이 되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더없이 소중하고 아까운 내 카메라 생각에 속병이 날 지경이었지만 이젠 분통 터지는 내 여행의 경험담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종종 메일을 뒤적이며 프랑스 경찰의 소식이 없나 찾아본다. 혹시라도 본분에 충실한 파리의 어느 경찰 덕분에 내게 연락이 오는 기적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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