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페이지] 벗에 대하여…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개똥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조금 모자란 듯 보였지만 언제나 천진한 표정이었다. 일찌감치 도회지로 나온 필자는 이 친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을 떠올렸고 살며시 피어나는 그리움에 몸살까지 왔다.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우연히 개똥이도 만났다. 그동안 고향을 지키며 살다 결혼도 했고 슬하에 딸아이도 하나 있었다.
그 후 술을 좋아하는 개똥이는 술에 취하면 가끔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야! 오늘 내가 예전의 너의 집 앞을 지나가는데 친구가 왜 그리도 생각나누? 친구만 생각나는 게 아니라 친구의 가족까지 모두 생각나네. 그래서 전화해봤어.”
친구는 이후로도 거나하게 취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횡설수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어눌한 말투로 지나간 추억을 얘기하는 개똥이의 얼굴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행복해졌다. 그래서 필자도 가끔 고향 생각이 나면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향수를 달래곤 했다.
어느 해 5월 5일, 초등학교 교정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운동회를 했다. 어렵게 은사님도 몇 분 모시고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놀았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음악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들며 춤도 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안 보이던 개똥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친구들은 개똥이의 손을 잡아 끌어 함께 춤을 추었다. 그때 필자는 개똥이의 바지 앞자락이 흥건하게 젖은 걸 봤다. 술에 취해 소변을 보다가 그랬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런 개똥이의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런 사건이 있고 난 뒤 어느 추운 겨울날, 고향으로부터 비보가 날아들었다. 개똥이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친구는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고 웃고 있었고 슬하에 하나밖에 없는 딸이 외롭게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천진난만하고 약간 모자란 듯했던 친구는 부모의 재산 분할 과정에서 형제들에게조차 무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술로 아픔을 달랬던 걸까. 영정사진 속 친구 얼굴을 보니 술에 취해 전화를 하던 날들처럼 필자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친구야 왔어? 어제 저녁엔 친구네 집 사랑방에서 재미있게 놀던 생각 했는데… 반가워~”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알코올 중독에 가깝게 망가진 친구는 가장 추었던 그날도 어김없이 읍내로 나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에 눈 쌓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변을 당했다. 술에 취한 채 다락논이라던가? 그곳에서 신발과 옷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신발을 베게 삼아 반듯이 누웠단다. 친구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자 가족은 이른 아침에 친구를 찾아 나섰고 길에서 동사(凍死)한 친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그를….
그렇게 친구는 갔다.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나갔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아직도 환한 웃음을 머금고 “친구야!” 하고 부르는 개똥이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친구야, 하늘나라는 살기가 어때? 그곳에서 그리워하던 부모님 만나 잘 지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