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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의 기도

기사입력 2017-11-01 13:41

단풍도 녹음처럼 짙어간다. 유독 예쁜 색을 만드는 단풍이 있다. 은행잎처럼 물감을 부은 듯 온통 같은 색으로 물드는 잎이 있는가 하면, 그러데이션되어 색의 농담(濃淡)이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듯 보이는 잎도 있다.

감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유난해서 이파리 몇 개를 주워본다. 완벽한 모양의 잎이 아닌 자연스럽게 벌레가 먹거나 얼룩진 잎을 고른다. 누군가 물을 들이다 놀러 나간 것처럼, 낙서라도 한 듯 색깔이 제멋대로다. 벌레 먹어 한쪽 모양이 일그러졌거나 구멍이 난 것이 더 자연스럽고 더 낙엽처럼 느껴진다. 나이를 먹고 상처 입은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이는 가을이다.

탄천 보행로를 다시 열심히 걷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허리를 펴고, 시선은 멀리 두고 속으로 구령을 맞추듯 걷는다. 그런데 앞에서 느리게 걷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자 보행기에 의지한 채 몸을 제대로 펼 수도 없어 보이는 50대쯤의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비스듬한 자세로 어렵게 발을 옮기고 있었다. 뒤틀린 몸을 보행기에 걸치고 마치 보행기가 그녀의 뼈라도 되는 듯 의지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키는 작지만 다부져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의 걸음을 재촉하며 걷는 모습이 마치 마부를 연상하게 했다. 그 남자의 손에는 기다란 묵주가 들려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여자의 힘든 발걸음을 재촉하며 남자는 묵주를 돌렸다.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해 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생명줄인 듯 일그러진 표정이었지만 온화한 희망이 느껴졌다.

그들은 부부처럼 보였다. 젊은 시절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했고 많은 난관을 같이 극복하며 보듬었을 부부. 다시 온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모습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그들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계절처럼 인생도 그렇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보며 배운 것으로는 깨닫기 힘들고 스스로 겪어야 자기의 것이 된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마른 풀 냄새를 맡고, 부드러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건강한 다리로 걸을 수 있으니 성공한 것 아닌가.

성공한 삶이란 소박함에 자족하는 깨우침이며,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이며,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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