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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구와 영감은 억울하다

기사입력 2017-08-17 20:28

할머니를 일컫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할매, 할멈 그리고 할망구 등이 그것이다. 할머니는 큰 어머니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할’은 ‘크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한'이 변형된 말이다. 할머니는 원래 한어머니이다. 지금도 전남지역에 가면 할아버지를 한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아버지가 발음하기 편하게 할아버지로 변한 것이다.

할매는 할머니의 경상도식 사투리이다. 경상도 아이들이 할머니를 할매라고 부를 때는 참 정감있고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지방에서는 할아버지를 할배라고 한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할매라는 말은 많이 쓰여도 할배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자주 볼 수 없다. 왜일까.

할멈은 늙은 여자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지체 낮은 여자를 부르는 말이니 비속어에 가깝다. 마귀할멈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악행을 저지르는 할멈으로 서양의 동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파파할멈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멈을 말한다. 역시 늙은 여자를 부르는 말이다. 할멈이라는 말도 자주 쓰이지만 할아범이라는 말은 자주 쓰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일까.

할망구라는 말도 심심찮게 할머니를 부르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할망구에는 속어인 할멈이나 방언인 할매와는 전혀 다른 깊은 뜻이 담겨있다. 옛날에는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많았다. 약관, 이립 그리고 불혹 등은 교과서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망구(望九)는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으로 81세를 일컫는다. 옛날에는 81세를 살았으면 장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81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눈앞에 보이는 90까지 살라는 덕담이 담긴 망구라 했다. 속어처럼 들리는 할망구는 전혀 속어가 아니다. 오히려 장수를 한 할아버지나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뜻의 호불호를 떠나 할망구는 더 이상 존경심을 담아내지 못하고 비속어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아마 그 발음에서 오는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비슷한 의미로 나이든 남자를 지칭하는 영감이 있다. 원래 영감이라는 말은 지체 높으신 어른을 일컫는 말이다. 아직도 영화에서는 젊은 검사에게 영감이라고 부르는 대목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든 남자에게 영감이라고 하면 싸움이 날 만큼 영감이라는 말도 속어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

81세를 망구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나이를 빗대어 일컫는 표현이 많이 있다. 77세는 희수라 한다. 희(喜)자의 흘림체(초서)가 七十七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88세는 미수라 한다. 미(米)자를 해자하면 88이 된다. 당연히 88세를 미수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백수는 몇 살을 말하는 것일까. 100세라고 하면 틀렸다. 백수(白壽)는 99세를 일컫는 말이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이 되기 때문이다.

할매와 할멈이 할배나 할아범 보다 자주 쓰이는 이유는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상대로 할멈이나 할매라는 말을 자주 썼기 때문이다. 할망구는 구십을 바라보는 어르신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대체로 남자들은 81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 81세를 살아 망구라 불리는 사람은 대체로 여자였으므로 역시 할머니를 지칭하는 말처럼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을 지칭하는 할망구와 영감이 비속어가 된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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