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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블랙코미디 <대학살의 신>

기사입력 2017-07-24 09:52

▲예술의 전당 소극장 로비의 연극 포스터(박혜경 동년기자)
▲예술의 전당 소극장 로비의 연극 포스터(박혜경 동년기자)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서 재미있는 연극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이 <대학살의 신>이다. 팸플릿을 보니 네 명의 남녀주인공이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 담겨있는 신나는 블랙코미디인 것 같은데 왜 제목이 '대학살의 신'일까? 궁금했다.

궁금증은 연극이 끝나고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대학살의 신’ 이라면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도 떠오르고 무서운 이미지가 생각난다.

이 연극은 고상한 척 우아해 보이려고 애쓰는 중산층 두 부부의 이야기로 대학살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지만 실은 그들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자아가 튀어나오니 대학살의 현장처럼 아수라장이 된다는 의미로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 같다는 필자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우선은 주인공이 유명한 탤런트와 뮤지컬 분야의 베테랑들이다.

대한, 민국, 만세, 세쌍둥이 아빠인 송일국 씨와 그동안 보아 온 많은 뮤지컬에서 멋진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었던 남경주 씨, 최정원 씨, 이지하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뮤지컬이 아닌 연극에서 호흡을 맞추어 연기한다니 매우 흥미롭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예술의 전당 소극장은 아담한 크기에 경사도가 있어 앞사람에 가려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않아도 무대가 잘 보여서 다행이었다.

대부분 소극장이 좁은 좌석에 높낮이가 크지 않아 앞쪽에 요즘같이 늘씬하거나 건장한 젊은이라도 앉으면 머리에 가려 연극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날의 좌석은 무대와 매우 가까운 곳으로 손만 뻗으면 주인공과 악수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TV에서만 보았던 송일국 씨는 매우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게 관객에게 다가왔고 뮤지컬 배우인 남경주 씨와 최정원 씨, 이지하 씨는 어쩌면 그렇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지 그들의 몸짓과 대사 한마디에 관객은 즐거운 폭소를 터뜨렸다.

 

2009년에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연출상, 여우주연상, 올리비에 상 최우수 코미디 상을 받은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인 야스미나 레자의 고품격 코미디이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건 동서양이 다르지 않은가 보다.

이 연극도 두 아이가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아이의 앞니를 두 개나 부러뜨린 사건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가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피해자의 부모인 미셀과 베로니끄가 가해자의 부모인 알렝과 아네뜨를 집에 초대한다.

생활용품을 파는 직업을 가진 미셀 부부는 상대방이 변호사이므로 기죽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데 평소 장식하지 않던 튤립 꽃을 한 아름 사다가 집안을 장식하고 고상한 척 대화를 해 나간다.

 

교양과 매너를 갖춘 듯한 가해자 부모인 변호사 부부는 실은 속물 변호사로 아들의 일엔 관심 없고 돈 되는 변호만 쫓는 남편과 그를 혐오하는 고상하고 우아한 모습을 가식으로 펼치는 이중인격 아내이다.

이들 부부는 서로의 속마음을 감추고 예의 바른 척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피해 아이의 엄마는 가해 아이의 못된 점을 피력하며 반성과 직접적인 사과를 원하고 가해 아이의 엄마는 놀다가 생긴 일인데 자기 아이가 뭐 그리 잘못했나 라는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

그러니 대화가 겉돌고 결국은 가해 아이 엄마가 남의 집에서 구토를 하고 이에 고상한 척하던 집주인은 감정이 폭발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각자의 부부가 평소의 불만을 터뜨리는 등 서로를 공격하며  대학살의 현장에 못지않은 상황이 펼쳐진다는 이야기다.

송일국 씨의 무난한 연기도 좋았고 뮤지컬에서만 보았던 남경주 씨, 최정원 씨, 이지하 씨의 온몸을 던지며 보여준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어 위선과 가식으로 뒤범벅된 인간의 민낯을 까발린 고품격 코미디 한 편이 관객을 즐겁게 하고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가슴을 쳤다.

중간 휴식시간 없이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이 연극은 열정적인 배우들의 연기에 언제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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