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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seoul, 북정마을

기사입력 2017-06-07 09:36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 우리가 보존해야 할 서울의 사대문 안의 마지막 달동네가 몇 군데 있다. 우리의 역사문화지구로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보려고 한다. 이름하여 ‘Remember seoul’이다. 허름하고 빛바랜 동네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북정마을, 김광섭 시인이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는 바로 그 마을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중 첫 연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초록색 마을버스 03번을 타고 북정마을 노인정 앞에서 내리면 눈앞으로 아주 오래된 마을이 펼쳐진다. 복잡하게 뒤엉킨 전봇대 위의 전깃줄이 먼저 이 마을의 인상을 알려주는 듯하다. 그리고 낡은 집들과 좁은 골목이 세월을 이야기하고 마을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한다.

건너편으로는 성곽이 길게 보인다. 일단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서 꼭대기부터 내려오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을 따라 숨차게 성곽까지 올라갔다. 성벽에 서서 내려다보니 오래된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니 서울 시내도 보인다. 흔히들 부자마을로 일컫는 성북구 동네가 옆에 있다. 성문 너머로는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마치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한 옛 동네 북정마을과 개발된 빌딩과 아파트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돌려 눈에 담은 북정마을에는 따뜻한 옛정이 느껴지는 아늑함이 있다. 한양 성곽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서 든든하기까지 하다.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마을의 가장 높은 성곽에 올라 마을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바람에 땀을 식혔다. 성곽 바깥쪽 길을 잠깐 걸어보았다. 이 길을 따라 한양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오갔던 조상들을 잠시 상상하면서…. 현재 이 길은 이 지역 사람들의 걷기 코스로 잘 이용되고 있는 듯했다. 산책길이고 운동코스인 멋진 길이다. 성벽을 통해 북정마을을 들여다본다. 저 안에서 성북동 비둘기가 날았을 테고, 만해 한용운이 나라 걱정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제 천천히 북정마을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방치된 폐가가 보였다. 집을 비우고 이사 나간 사람들이 남긴 살림살이와 돌담 벽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길 옆 텃밭들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자그마한 안마당엔 정갈한 장독들이 있었고 꽃을 피우는 나무가 우뚝 서 있기도 했다. 녹슨 대문 안에선 빨래가 뽀송뽀송 마르고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삶의 현장이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문명 속에서 어서 빨리 변하자며 등 떠미는 세상과는 상관없이 무심한 시간을 살고 있는 마을이 의연해 보인다. 시간은 그렇게 간다.

마을 아래로 내려와 심우장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섰다.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곳. 집의 방향이 돌아앉은 모습이다. 이를테면 북향인 것이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 남향으로 짓지 않고 북향 터를 잡았다고 한다. 투철한 저항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용운은 “조선 전체가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는가”라며 볕이 들지 않는 이곳 북향 집에서 불도 때지 않고 겨울을 견뎠다고 한다.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심우장은 북정마을을 갈 때 빠트릴 수 없는 주요 장소다. 그러다보니 마루에 앉아 있거나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는 만해 선생의 ’님의 침묵‘을 비롯한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방이나 부엌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해 한용운은 아쉽게도 해방되기 1년 전에 생을 마감했다.

심우장을 나와 주변의 조붓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길고양이들을 자주 본다. 이 동네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가게 앞에 나와 앉아 있다.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저녁 무렵이 되니 시장을 다녀오는 어머니들이 힘들게 비탈길을 올라간다. 그 발걸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북정마을(이현숙 동년기자)

한양 도성과 성곽이 인접해 있어 멋과 품위가 느껴지는 오래된 동네, 이런 성곽과 옛 향기가 스며 있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다행히도 재개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마을 아래쪽에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공방이 생겨나고 연극 포스터가 바람에 날린다. 이런 새 바람들이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새로운 변신에 기대가 된다. 서울의 옛 모습 속에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북정마을이 변모하고 있다. 그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들이 현대 사회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푸근한 옛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이제 내려와야 할 시간.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변화하며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동네. 그곳을 거닐면 유년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따스해진다. 좁은 골목을 걸으며 지친 가끔 하늘도 올려다본다. 변화해가는 마을 아래도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쯤에 필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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