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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아, 상주의 가을

입력 2025-11-08 06:00

[명소 답사기] 낙동강 1300여 리 물길 중 경관이 으뜸

소도시 여행은 마음을 가다듬어준다. 호젓하고 고즈넉한 풍경과 옛 전통문화를 걸으면서 만나고 스치면서 느낀다. 곶감을 먼저 떠올리는 상주다. 압도적이진 않아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은은한 존재감을 지닌 상주의 가을을 만났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경상북도 상주는 소소한 맛이 물씬한 도시다. 경상도라는 지명이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따서 붙였듯이, 오래전부터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시였다. 그 옛날 경상도 지역을 아우르는 도청인 경상감영도 상주에 있었을 정도로 영남지방의 주요 중심지였다. 영남은 경상의 다른 말로 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라는 이름이다. 조용하고 소박한 도시로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속속들이 다정하고 순한 맛의 상주다.


하늘이 내린 절경, 경천대(擎天臺)와 경천섬

낙동강은 상주의 사벌면 퇴강리 앞에서 강의 본류가 시작된다. 이곳 마을 입구의 공원에 ‘낙동강 700리’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렇듯 낙동강이라는 이름은 곧 유구한 역사의 상주를 있게 했다. 길고 긴 낙동강의 유장한 물길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상주의 경천대다.

경천대는 낙동강 제1경(景)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낙동강 1300여 리 물길 중 경관이 으뜸이다. 지금은 경천대 관광단지로 관리되고 있다. 근래엔 여러 가지 편의시설과 함께 상주시가 교통약자와 여행자들의 편리를 위해 마련한 무료 순환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울창한 노송숲과 낙동강 강바람길, 108기의 돌탑, 목교와 출렁다리, 전망대, 강가 절벽 위에 지어진 드라마 ‘상도’ 세트장, 조형 작품들을 그 길에서 만난다. 어느 지점이든 낙동강을 향한 전망이 좋아 산책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경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감탄이 나올 만큼 비길 데 없다. 가장 아름다운 낙동강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송림이 우뚝 솟은 절벽 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처럼 마음도 느긋해진다.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정자 무우정이 무심히 강을 내다보고 있다. 무우정은 조선시대 당대의 석학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채득기 선생은 병자호란으로 인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끌려갈 때 수행한 인물이다. 훗날 돌아와 관직을 마다하고 북벌 의지를 다지며 만년을 지낸 채득기 선생의 굴곡 많은 삶을 짚어보며 낙동강 풍광을 즐긴다. 인파로 붐비는 번잡한 명소와 달리 한적한 경천대 숲길에서는 여유롭게 자연을 마주한다. 무우정 주변이 공사 정비 중이어서 정자에 오르진 못했지만, 운치 있는 기암절벽 아래 그 옛날에도 굽이쳐 흘렀을 낙동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시간이었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이제 섬으로 간다. 경천섬은 낙동강 상류에 있는 약 20만㎡의 섬으로, 경천대에서 약 5분 거리의 자연 친화적인 생태공원이다. 누에나방을 형상화한 지붕의 범월교를 따라 건너편 섬으로 들어간다. 다리를 건너며 탁 트인 강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새소리,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자전거를 대여해서 한 바퀴 돌거나 강아지와 함께 느릿하게 산책하는 커플들이 오가고, 나무 아래 마주 앉은 이들의 도란도란함도 그림 같다. 어디에서든 강물이 흐르는 풍경이 배경이다. 상주에선 이렇게 낙동강을 누린다. 오후가 되면 노을과 야경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든다.

섬 건너편 학 전망대와 청룡사는 산 중턱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있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학 전망대에 서면 주변의 광활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을 가운데 두고 너른 강이 길게 흐르고, 전망대 바로 아래는 낙동강 옛길의 회상 나루다. 과거 상주에서 의성과 안동으로 연결되는 지름길이어서 목재나 농산물 운송으로 북적거렸던 나루터다. 지금은 한가롭기만 한 강가에 한옥으로 형성된 객주촌이 있으며, 주변 낙동강 문학관을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옛 정취를 품은 회상 나루와 경천섬을 잇는 낙강교 아래 낙동강 물은 거울처럼 맑기만 하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두 바퀴로 달리는 상주, 자전거박물관

상주의 경천대와 경천섬 일대는 캠핑장, 레저센터, 문학관, 박물관, 낙동강생물자원관, 국제 승마장, 서원 등의 관광자원이 조성돼 있어 심심할 틈 없는 문화 여행지다. 자전거 조형물로 이루어진 다리를 건너면 국내 유일의 자전거박물관이다. 여기서 자전거의 역사는 물론이고 인류 최대의 발명품인 바퀴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상주는 자전거의 도시다. 상주역에 내리면 자전거 대여소가 기다릴 만큼 자전거로 시작되는 곳이다. 상주시의 자전거 보유 대수는 8만 5000여 대로 한 가구당 2대꼴이라는 통계도 있었다. 역시 전국 제일의 자전거 도시답게 최초의 자전거박물관도 운영한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해 자전거의 진화 과정 등 다양한 전시와 4D 영상관, 안전 체험관이 마련됐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고 빛바랜 흑백사진의 기사 내용을 보면서 상주가 자전거 도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수긍한다. 빼어난 풍광의 낙동강 변을 따라 달리는 끊임없는 라이딩 행렬이 상주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낙동강을 품은 도남서원

1606년 창건돼 낙동강 무임포에 자리 잡은 도남서원은 긴 세월 동안 훼철과 복원을 거듭하며 지금껏 보존되고 있다. 도남서원은 조선의 유학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탄생한 서원이다. 이곳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간다. ‘평소에는 문이 열려 있으나 잠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잠겨 있을 때 a부분을 위로 밀면서 손잡이 b를 오른쪽으로 당기면 열립니다’라는 설명과 그림을 입구에서 볼 수 있다. 방문객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맛도 특별하다.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도 내 몫이라 생각하며 옛 풍경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간다. 정허루의 2층 누각에 서면 도남서원의 낮은 담 너머로 낙동강의 흐름과 경천섬이 보인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돌장승이 먼저 맞아주는 남장사와 곶감 마을

상주 노악산 자락에 자리한 1200년 고찰 남장사는 경북 8경의 하나다. 한국 불교의 전통음악인 ‘범패’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고, 학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불교 유물들이 보호되고 있다. 남장사에 이르는 사찰 입구에서 민속문화유산 제53호로 지정된 석장승을 먼저 만난다. 불교 신앙과 민속 신앙이 공존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석장승이 익살스러우면서도 갸웃한 자세로 서 있다. 큰 사찰은 아니어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절대 작지 않다. 고요한 보광전 뜰 아래 청정한 꽃들이 빛을 내고 널찍한 잎의 파초가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파초는 불교에서 속세를 떠나는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상징해 절에서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사찰에 이르는 완만한 오름길 옆으로 상주 특산물인 곶감 마을을 지난다.

상주에 머물다 보면 비로소 넓은 땅임을 실감한다. 전국적으로도 손꼽을 만큼 면적이 넓은 지역이다. 예부터 상주를 ‘삼백(三白, 쌀·누에·곶감)’의 고장이라 불렀던 건 이런 풍요로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볼 만한 곳이 곳곳에서 기다린다. 주황빛 말랑말랑 곶감 마을, 도심 속의 중덕지 자연생태공원, 여전히 쏟아져 내리는 장각폭포와 화령장 전투기념관, 요즘 아이들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효자정재수기념관도 의미 있다. 500년 수령으로 추정되는 상현리의 오래된 소나무 반송, 그 늠름하고 거룩한 자태에서 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들으려고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했다. 곶감 말고도 자랑거리가 많은 상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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