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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의 그림 이야기]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모셰 다얀’을 만나다

기사입력 2017-02-20 11:17

검은 안대(眼帶)를 한 조선시대 인물 낙서 장만(洛西 張晩, 1566~1629)의 초상화(사진 1)를 보는 순간, 생생한 현대사의 한 장면이 영상처럼 겹쳐졌다. 바로 검은 안대를 한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 모셰 다얀(Moshe Dayan, 1915~1981)의 이야기다.

▲Moshe Dayan(1915~1981)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사진 1)
▲Moshe Dayan(1915~1981)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사진 1)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그림 속 인물이 실명(失明) 상태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지금까지 네 점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눈가리개’인 안대를 한 초상화는 단 한 작품이다.

장만은 조선시대 선조(宣祖), 광해군(光海君), 인조(仁祖) 때 문신으로서보다는 무인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국토의 북녘 지역에서 나라를 지켰다. 특히 병자호란 때 북방 수비에 큰 공을 세웠다. 1624년(인조 2년)에는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해 공신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만은 왼쪽 눈에 큰 부상을 입고 실명하고 말았다. 그 후 진무공신(振武功臣)으로 공신상(功臣像)이라는 초상화를 하사받게 되었는데, 바로 이 공신상에서 검은색 안대가 훈장처럼 크게 눈에 띈다.

1956년과 1964년 두 차례에 걸쳐 중동 지역에 전운(戰雲)이 휘몰아쳤다. 각각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 반도를 둘러싼 전쟁이었다.

1956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1918~1970) 대통령이 그동안 영국, 프랑스, 미국이 주도하던 수에즈 운하의 관리 경영권을 박탈해 국유화하자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시나이 반도를 넘어 수에즈 운하의 서편 제방(Bank)까지 진격했고, 영국과 프랑스 또한 공군력을 앞세워 참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67년 이번엔 아랍 연합과 이스라엘 간에 이른바 6일 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이스라엘은 이른바 ‘번개전쟁(Blitz Krieg)’이라는 작전으로 자국 국토보다 두 배나 넓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요르단의 동예루살렘 시를 포함한 웨스트뱅크(West Bank) 지역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 고원(Golan Heights)을 점령했다. 6박 7일간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끝난 전쟁이었다(주: 훗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웨스트뱅크와 골란 고원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점령지로 남아 있다).

이 두 번의 전쟁에서 1956년에는 총사령관으로, 1967년에는 국방장관으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 바로 모셰 다얀이다. 나중에 외무장관직(1977~1979)에 오르기도 한 그는 전쟁 영웅으로서 세계 정치·외교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낙서 장만(洛西 張晩, 1566~1625) 공신상의 일부(사진 2)
▲낙서 장만(洛西 張晩, 1566~1625) 공신상의 일부(사진 2)

그런데 모셰 다얀은 1941년, 그러니까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이웃 아랍국들과 벌어진 크고 작은 무력 분쟁 때 왼쪽 눈에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그의 이름과 더불어 검은색 안대가 마치 ‘훈장’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었다(사진 2).

검은색 안대를 한 조선시대 인물의 초상화를 보며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모셰 다얀이라는 전쟁 영웅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검은색 안대 없는 모셰 다얀과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인공인 낙서 장만을 생각하며 ‘아이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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