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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블로거] 다시 고개를 넘는 중년

기사입력 2014-02-12 17:09

▲'새롭게 시작하기(The Embarkment)' / 필립 윌슨 스티어(Philip Wilson Steer)

글ㆍ사진| 블로거 레스까페

지난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세 명이 시작한 모임이 이제 다섯으로 늘었지만 모여서 이름이 거론되는 친구들은 몇 배나 많습니다. 그러다가 거의 30년 가까이 못 만난 친구 이름이 나왔고, 그 친구와 절친한 사이였던 저는 마침 전화번호를 알고 있던 친구를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작년 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10년 넘게 살던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길 하나를 두고 있었으니까 지척이었던 셈입니다. 어쩌다 길에서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것은 빗나감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다음 날 오후 친구를 만났습니다. 젊었을 때 좋았던 얼굴과 몸에는 중년의 나이가 내려앉았습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지난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번의 사업 실패와 약간의 질병이 그를 많이 힘들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예전에 눈부시게 빛나던 여유는 여전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우리 세대는 엄청난 순간들을 겪어 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몇 세대에 걸쳐 만들어지는 성장이 '압축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고 마찬가지로 또 그 만큼에 걸쳐 진행되어야 할 저성장이 IMF를 통해서 바로 다가왔습니다. 한 세대 내에 성장과 나락을 동시에 맛보게 된 것이죠. 마흔을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일하던 때에 들이닥친 IMF는 우리들에게 절망이었습니다. 그 고비를 건너온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그 물결에 몸과 마음을 다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늘 걱정하는 것은 다시 넘어졌을 때 일어날 시간이 이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여전히 꿈과 에너지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비해 홀쭉해진 얼굴이 잠시 저를 안타깝게 했지만, 아직 물러서지 않는 그의 느긋함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와 지금 사는 이야기가 얽히고 라면을 같이 끓여 먹으면서 다가올 꿈에 부풀어 있었던 젊은 시절이 섞였기 때문일까요? 오후부터 시작한 술이 제법 되었지만, 취기가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부족하면 조금 더 노력하고 없으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의 것은 더 이상 쳐다보지 않게 되면서 이제 욕심이랄 것도 없습니다. 자주 보자고 헤어지면서 시장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는 친구의 등에서 또 한고비를 넘는 중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는 제 마음 속의 말을 친구도 들었겠지요. 초 저녁 겨울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출처| 레스까페(http://blog.naver.com/dkseon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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