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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파트너를 잃고

기사입력 2016-07-12 15:43

▲댄스 경기 참가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트너. (강신영 동년기자)
▲댄스 경기 참가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트너. (강신영 동년기자)
올해 첫 장애인댄스스포츠 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지 못하고 행정요원 역할만 했다. 오전엔 휠체어댄스 위주의 경기가 있었고 오후에는 일반인 대회가 열렸다. 익숙한 음악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은 들썩이는데 그냥 앉아서 남들 춤추는 거나 구경하자니 못 할 일이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땄으니 그런대로 선수 생활을 유지는 한 셈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내가 선수로 뛰던 시각장애인 부문이 전국체전 공식종목에서 제외되면서 시각장애인 파트너도 관심을 잃은 모양이다. 더 이상 연습하러 나오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재작년이 내 선수 생활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당시 장애인 파트너가 출중한 기량을 보여 장애인 대회는 물론 일반인 대회까지 같이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건강이 안 좋아 전국체전을 코앞에 두고 그만두었다.

여세를 몰아 일반인 파트너룰 구해 일반인 대회에 출전했으나 일반인 파트너의 계산은 달랐다. 스탠더드 5종목에 출전할 수 있으면 프로 부문에 출전해도 되는데 왜 아마추어, 일반부, 장년부에서 이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프로 부문에 출전하면 성적에 관계없이 프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프로에 올라가면 프로에 걸맞게 매일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성적은 거의 하위권 수준일 수밖에 없다. 지금 정도의 훈련 량으로도 아마추어, 일반부, 장년부에서는 상위권 성적이 나오는데 굳이 프로 무대에 올라가 하위권에서 들러리 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은퇴 선언을 안 했으니 필자는 현역선수이다. 단지 파트너가 없을 뿐이다. 파트너만 있으면 곧바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준비된 자에게 파트너도 생긴다고 한다. 열심히 하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보고 파트너를 추천하거나 연결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만으로 열심히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내야하고 선수 트레이닝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낼 체력이 필요함은 물론 트레이닝 과정에서의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젠 그렇게까지 하기 싫은 것이다. 이 나이에 트레이닝 과정에서 자존심 상해가며 지적질 받는 것도 싫고 파트너 비위 맞추기도 내키지 않는 것이다.

장애인 파트너도 그렇다. 그간 자원봉사자로서 봉사의 의미를 중시했었는데 각 시도대항 대회가 되다 보니 성적도 중요했다. 내 딴에 취미나 봉사로 시작한 일이 기왕 대회에 나갔으니 성적에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내게 메달의 의미는 단지 파트너와 같이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 찍는 것 밖에는 없다. 그동안 딴 메달도 처치 곤란일 정도로 많다. 처음엔 뿌듯하더니 각 대회마다 메달을 보통 3개 정도씩 따고 보니 희소성도 떨어졌다. 내겐 성적이 중요하지 않지만, 상급학교 진학을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성적이 중요하다. 나의 선전이 그들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미안한 생각도 든다.

일반인 파트너도 더 이상 기대를 안 한다. 나이도 불리하고 키도 작은 편이라 여자들이 선호하는 타입의 남자 파트너가 아니다. 대회 때면 승용차로 모시러 가고 끝나면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 하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입장이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프로 부문이라도 출전해준다면 나설 여자들은 좀 있겠지만, 연습도 안 하는 내 실력을 알면서 프로부문에 출전할 수는 없다. 이미 구면이 되어 버린 심사위원들이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할까봐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서는 못 할 짓이다.

덕분에 운 좋게 황금기를 누렸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안 해본 사람도 많은데 댄스스포츠를 해 본 것, 그리고 그중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선수생활도 해 본 것, 장애인댄스도 해 본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더 이상 파트너 기다리며 애태울 일은 없을 것 같다.

-강신영 동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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