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로 수술받는 환자는 1년에 22만 명이 넘는다, 수술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40세 이상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앓고 있다고 추정되는 질환이다. 바로 ‘부끄러운 질병’인 치질(痔疾)이 그것이다. 쑥스럽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질병, 치질에 대해 가천대학교 길병원 대장항문외과 백정흠(白汀欽·51) 교수와 메디힐병원 민상진((閔相軫·46) 병원장을 예방법과 대처방법을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앞에서 언급한 숫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1년 주요 수술통계’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40대와 50대가 가장 많이 받았던 수술은 바로 치핵 수술이다.
보통 우리가 치질이라고 부르는 질병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질환의 명칭은 아니다. 항문에서 발생하는 질환들, 치핵이나 치루, 치열, 항문소양증을 통틀어 치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치질은 그 발생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치핵을 말한다. 때문에 치핵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치핵의 가장 큰 적(敵)은 변비
백정흠 교수는 치핵의 주요 원인으로 배변 습관과 변비를 꼽는다.
“치핵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쁜 배변 습관과 변비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과거에는 화장실에 들고 들어가는 신문이 치핵의 적이었는데,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죠. 아침을 거르거나 불규칙한 생활로 발생하는 변비도 치핵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음주도 주요 원인이며 간경화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고령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무절제한 처방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민상진 병원장은 경고한다.
“동네에서 나이 많은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의외로 항우울제 처방을 받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기력이 없고 몸이 좀 처진다고 하면 우울증약을 처방해 주는 것이죠. 문제는 이 항우울제가 변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개선이 필요하죠. 또 변비약의 남용도 문제가 돼요. 변비약을 자주 복용하면 장운동 능력을 저하시키거든요. 되레 소화기능을 저하시키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두 전문의 모두 강조한 것 중 하나는 배변 시간이다. 배변 시간이 길어지면 항문 점막이 노출돼 말라 버리고, 심한 경우 변에 긁혀 치열이 생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 배변 시간을 지연시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신경을 분산시켜 배변 운동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배변에만 집중하고, 3~5분 이내로 마무리 짓는 것을 추천했다.
민상진 병원장은 생활 패턴이 바뀌는 것도 변비의 큰 원인으로 꼽는다.
“보통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며칠, 심하면 1주일 넘게 화장실에 못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런 경우는 몸의 생활 패턴과 리듬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화와 배변은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변비를 피하기 위해선, 하루 세 끼를 가급적 정확한 시간에 먹고, 규칙적인 패턴으로 생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증상 발생하면 좌욕으로 악화 막아야
일반적으로 치핵은 그 정도에 따라 1~4도로 구분한다. 출혈만 있을 때가 1도, 치핵이 빠져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단계가 2도다. 3도는 치핵이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는 단계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4도로 판단한다.
1, 2도의 경우 보존적 치료, 즉 수술을 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 약물이나 연고도 사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좌욕이다.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올바른 좌욕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좌욕 방법은 42~43도 정도의 따듯한 물에 5분 정도 항문을 담궈주는 것이다. 환경에 따라서는 서양식 비데나 샤워기를 통해 따뜻한 물을 쐬어 주는 것도 좋다. 단, 수압이 높으면 상처를 줄 수 있어 낮은 수압을 유지해야 한다.
민상진 병원장은 “내원 환자들을 보면 잘못된 민간요법으로 오히려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화상 등으로 병을 악화시켜 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훈증기를 통해 수증기를 쐬는 방식의 민간요법은 오히려 점막에 화상을 입힐 수도 있고 혈액순환에 필요한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지 못해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조언하고, “간혹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 외국에서 유통되던 약제를 이용해 치핵을 딱딱하게 굳게 해 치료한다고 했다가, 항문 협착 등 부작용까지 함께 얻어 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항문은 예민한 부분이므로 꼭 병원에서 치료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보존적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할 때는 수술을 선택한다. 최근에는 원형자동봉합기를 이용한 PPH 수술이나 하모닉 초음파 수술기를 사용하는 방식 등 기존 수술법보다 간편한 방식의 수술법들이 등장해 수술시간이나 회복기간이 짧아졌다. PPH 수술은 수술시간이 짧고, 항문통증과 재발이 적은 장점이 있고, 하모닉 초음파 수술기는 수술시 출혈이 적고, 통증이 감소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맞는 수술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백정흠 교수는 설명한다.
“현재 치질 수술에는 다양한 이론과 여러 가지 방식들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된다는 것은 즉 재고의 여지가 없는 왕도(王道)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치료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환자에 맞춰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비데 너무 세게 사용하지 마세요
최근 각 가정에서 전동식 비데 사용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비데 역시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써야 좋다고 백 교수는 충고한다.
“항문이 가려워지는 항문소양증 환자의 경우 가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비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태를 악화시키기 쉽습니다. 잠시 시원할 수 있지만, 비데 사용이 끝나고 나면 더 지독한 가려움을 느끼게 되죠. 치핵 환자의 경우에는 배변 후 ‘세정’보다는 ‘비데’기능의 수압을 낮춰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꼭 비데를 사용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물티슈로 가볍게 닦아내는 것도 좋습니다.”
그 밖에 숙변 제거나 관장도 배변과 관련해 환자들이 갖는 흔한 오해라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대장의 조직은 파이프의 금속재질과 달리 세포의 생성과 교체가 늘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숙변이라는 것이 붙어있을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변의 찌꺼기가 대장에 오래 붙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오해라고 한다. 다만 변이 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면 해결된다고 했다.
커피 등을 이용한 관장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잘못된 상식 중 하나. 대장 안에는 나쁜 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는 좋은 균들도 함께 있는데, 이를 모두 쓸어내려 버리면 되레 몸의 불균형만 초래하는 꼴이라고.
가장 위험한 것은 ‘속단’
항문질환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상태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라고 백 교수는 조언한다.
“치핵의 대표적인 증상은 출혈이지만, 배변 시 출혈은 치핵만의 증상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질환은 대장암이에요. 이 두 질환은 외과의사가 손가락으로 항문과 직장을 촉진만 해봐도 바로 구분할 수 있어요. 5분도 안 걸리는 과정이죠. 그런데 이런 진단 없이 스스로가 치핵으로 속단해 버리고 치료를 미룬다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를 본 적도 있어요. 출혈이 생기면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확진을 꼭 받으시길 권합니다.”
치핵을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운동이다. 여러 가지 운동이 있을 수 있겠지만, 민 병원장이 권하는 운동은 바로 걷기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무리한 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등산이라든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권하고 싶지 않고요. 정기적으로 평지에서 땀이 날 정도로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해 무리한 활동을 하기보단 안전사고에 유의해 가급적 가벼운 걷기운동을 많이 하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백 교수는 그 외에 항문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생활습관으로는 무엇을 먹는가보다는 언제, 어떻게 먹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변비로 고통받는 젊은 여성이 많아지는 이유도 대부분 다이어트 때문이거든요. 아침은 굶지 않고 삼시 세 끼를 제때에 제대로 챙겨 먹으면 변비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침에 일어나 찬물 한 잔 마시고, 그 자극을 통해 정해진 시간에 배변하는 습관을 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간혹 변을 보시고 나서 자신의 변을 확인하지 않는 분들도 계신데, 확인을 통해 건강을 체크하는 습관도 중요합니다. 피가 나진 않는지, 색깔은 정상인 황금색인지, 형태는 어떤지, 다른 점액이 있는지 등 확인했다가, 정상이 아니다 싶으면 의사에게 문의하는 것이죠.”
또 최근 유행하는 프로바이오틱스도 소화에 영향을 주고, 장운동이나 장점막 기능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추천한다. 다만 고혈압약이나 당뇨약, 고지혈증약을 복용 중이라면 4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먹는 것이 좋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