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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사진으로 누군가의 가난을 훔치지 마라

기사입력 2015-12-18 07:41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참 많은 나라들을 다녔다. 그 장소들을 정리할 일이 생겨 그 동안 다녔던 지역 이름을 적어 내려가다가 이름이 가물가물해 지역 지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친김에 아예 지도를 펼쳐 연도에 맞춰 촬영지역을 시간 별로 한 점 한 지역 표시하다보니 가히 세계전도가 그려진다. 그런데 대부분 머문 지역은 유명한 큰 도시가 아니라 모두 변방 오지들이다. 그 지역들이 모두 내가 사진가로 빚을 진 곳들이다. 그러고 보니 특히 몽골에 진 빚이 크다. 이번엔 그 빚 얘기?막연한 빚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빚을 진 상대의 얼굴까지 밝혀진 얘기다.

“몽골의 가난하고 어려운 모습을 감동적으로 촬영해주십시오.”

몽골에 친선병원을 세우는 이들이 후원금 모집을 위한 사진 촬영을 의뢰해왔다. 내가 받은 촬영의 목적은 뚜렷했다. 내가 촬영한 사진으로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현지에 도착한 나는 안내인을 통해 내가 받은 미션에 어울리는 장소를 섭외했다.

몽골의 살림은 어려웠고, 양로원과 아이들은 가난했다. 양로원에서 만난 한 분은 이미 수술로 제거된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전쟁 영웅이었다. 또 깡마른 한 늙은 여자 분은 자기가 죽으면 그 몸을 치워야 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그뿐 아니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몽골의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지 않으려고 겨울 몇 개월 동안 하수도의 온기에 몸을 맡겨야 했다. 나는 도시의 하수도가 합쳐지는 공간에 모여 사는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또한 그곳의 아이들에게 자선단체들이 옷과 음식을 주는 사진과 그 아이들을 치료하는 치과의사, 또 양로원의 삶을 촬영했다.

결과를 발표하는 날 나는 주최 측 관계자들과 예비 후원자들 앞에서 사진과 함께 촬영 현장에서 미처 담아낼 수 없었던 작가의 마음을 전달했다. 일상적인 사진전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만한 후원금이 모였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몽골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가난한 그들의 모습보다 더 가난한 나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노인들이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수프만으로 한 끼를 때우는 모습을 만났다. 그런데 그렇게 식사하는 그들의 얼굴엔 당당함이 있었다. 그 까닭을 사진 촬영을 다 마친 후에 알게 되었다. 이번 방문을 위해 양로원에 지원한 주최 측의 식비를 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최 측 당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준비한 기금을 아이들에게 베풀어주세요. 우리는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저 살던 대로 살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달라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식비를 써주세요.”

그렇게 그들은 가난한 한 끼를 선택했고 그들이 양보한 돈은 유치원을 짓는 데 쓰였다.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식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몽골의 앞날을 비추는 듯했다. 그 빛만으로도 그들은 넉넉했다. 그 사진을 촬영한 후 나의 시선은 바뀌었다. 함부로 누군가의 가난을 훔쳐선 안 된다는 사실을 그 양로원의 노인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가난한 모습을 소개하려던 생각을 거두었다. 그들의 당당함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었다. 그때 촬영한 사진 가운데 한 장으로 나는 ‘NGO의 유엔총회’라 불리는 인터액션총회에서 NGO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도왔다는 명목으로 대상을 받았다. 내가 몽골의 가난한 양로원의 노인들에게서 배운 그분들의 고귀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공감을 일으킨 증거일 것이다. 정작 대상을 받아야 할 주인공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가난 속에 머물러 있지만, 그들의 가난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난 가난을 훔치진 않았지만 결국 본의 아니게 수혜자가 되었다.

2006년 5월 미국 워싱톤 디씨 INTERACTION 총회에서 EA부문 대상 수상 연설(InterAction Grand Prize acceptance speech) 중 연관된 부분에 대한 발췌이다.

This photograph is simply of an old man filling his stomach, but there is something warm and majestic about this image. There is a reason they have but a single bowl as a meal. The people of the nursing home have cut their own meal budget. They felt that the money should be used, not for the elderly of Mongolia, but for the children, for the future of Mongolia.

Old age tires the body and mind and as appetites diminish, it is instinctual to seek softer and tastier food. However, they decided to lean on each other and persevere together.

We came to lighten their hunger, but we ended receiving an invaluable gift from them. We learned that people who are helping need to discuss and learn how to effectively help from those who receive the help.

그들은 가난한 한 끼를 선택했고 그들이 양보한 돈은 유치원을 짓는 데 쓰였다.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식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몽골의 앞날을 비추는 듯했다. 그 빛만으로도 그들은 넉넉했다. 그 사진을 촬영한 후 나의 시선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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