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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와 나 - PART6]손주교육, 거창한 훈육 따로 없다…그저 사랑이 최고

기사입력 2015-06-02 09:32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도덕적 가치를 아는 손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손자 자랑은 돈 내고 해야 한다는데…. 허허허허! 이제 그만합시다. 줄 돈도 없는데!”

윤경로(尹慶老·68) 전 한성대 총장은 인터뷰 내내 웃음기 담은 답변을 내놨다.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수십 년간 역사학자로 활동해온 그는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던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 당시 “잘못된 역사에 하나님을 망령되게 불러내고 있다”며 날을 세웠을 정도로 ‘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은 손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영락없는 (외)손자바보 할아버지였다. 더없이 따스하게 들려준 우리 시대 할아버지의 손주 사랑법.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조부모들이 ‘손주 바보’가 된다고 하는데 왜그럴까요?

“우리 세대만 해도 세상 살기가 바쁘고 어려워 자식사랑의 여유가 별반 없었지요. 우리 앞세대는 대가족시대였으니 또 그랬고. 아무튼 요사이 조부모들이 ‘손주 바보’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없이 살다보니 자식 사랑할 여유가 없었는데 손자녀를 보니 얼마나 반갑고 좋겠어요. 더욱이 요즘은 자녀들의 결혼이 늦어지고 자녀도 한둘만 낳는 세상이니 손자녀를 더욱 기다리게 되고 그래서 손자녀가 생기면 자녀보다 더 사랑스럽고 기쁜 것이지요. 내 주위에도 40이 다 된 자녀를 아직 결혼시키지 못한 친구들도 적지 않은데, 자녀들이 결혼도 해주고 손자, 손녀를 낳아주면 고맙고 반가울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자연 ‘손주 바보’가 되는 거지요. 손자녀들을 돌볼 때 더 친근하고 현명해져 이해심이 풍부해지더군요. 그래서인지 자식보다 손주들에게 특별한 믿음을 끌어낼 수 있고 보다 더 의미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 시대의 조부모의 역할은 뭐라고 보시나요?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잘 자라려면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시중에 회자되고 있어요. 그만큼 요사이 젊은 부모 세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자연 손자녀를 키우는 데 조부모의 역할이 옛날보다 중요해진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보면 저는 할아버지로서 능력도 자격도 별반 없는 축에 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력적으로 손자, 손녀를 지원해줄 형편이 못되니 말입니다. 그러나 조부모의 역할이 꼭 물질적 지원과 후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재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하더라도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해줄 역할은 많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마음의 멘토’라고나 할까. 저는 제 손자녀들이 할아버지를 만나면 그냥 마음이 편해지고 푸근한 ‘따뜻한 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면 해요.”

조부모로서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나요?

“과거에 엄격했던 유교 사회에서도 손자가 할아버지 수염을 뽑으면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역정을 내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손자녀 사랑은 낳은 부모보다도 조부모의 사랑이 더 크고 넓지요. 요사이 손자녀 가운데 조부모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어릴 때 안아주고 키워주고 커지면 용돈도 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엄마 아빠한테 야단맞을 때는 역성 들어주고 그러다보니 버릇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손자녀에 대한 조부모의 사랑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손자녀에 대한 마음가짐은 너무 과하지 않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하게 대해주는 것이….”

손자녀를 키우는 자녀의 교육방식이나 양육방법에 못마땅한 것은 없나요?

“요사이 젊은 부부는 아이들을 하나나 둘 정도 낳아 키우잖아요. 내 마음 같아서는 낳을 수 있는 대로 많이 낳아서 키웠으면 좋겠는데, 옛날과 달리 아이들 키우기가 워낙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으니 많이 낳으라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이렇게 한둘만 키우다 보니 자기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말문만 열리면 유아원 등 여러 곳으로 보내 공부를 시키는 세상이 되었는데 참 안타깝지요. 이건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니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어린나이 때부터 경쟁사회로 내몰리는 것이 참 안쓰럽습니다. 저는 2녀 1남을 다 시집 장가보내 외손자 둘, 외손녀 하나를 보았는데 친손자는 아직 보지를 못했지요. 옛 어르신들은 외손자 친손자를 구별했다고 하는데 요사이는 그런 것 없지요. 옛날에는 집안의 대를 이어야 했으나 지금은 그런 의식이 별반 없잖아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두 딸은 손자녀를 잘 키우는 것 같아 걱정이나 불만 같은 것은 없어요. 오히려 고맙다고나 할까. 매우 만족합니다.”

▲ 대도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 김도윤은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역사이야기로 시작한다. 200개 국기를 다 외우는 천재(?)성은 누굴 닮았을까.

교육자로서 남다른 손자녀 교육철학은?

“글쎄요. 평생을 교육현장에서 보냈지만 손자녀에 대한 교육철학을 따로 구상한 적은 없어요. 굳이 한마디 한다면 우리 옛말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제로 아이들의 지능과 성품과 품성은 만 3세 안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고요.

그리고 아이들은 ‘본대로 따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아기일 때 어떻게 키우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방법은 역시 사랑이지요. 부모와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가 커서 남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해요. 저는 우리 손자녀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 그 받은 사랑을 이웃과 더 크게 나누며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크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다’라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며 실천하는 손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손주 자랑 좀 해주신다면

“저는 손자녀들을 보면 말하기보다 껴안고 뽀뽀하기를 좋아해요. 허허허!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하지요. 애들이 싫어하는 것을 모르고 자기 좋은 대로만 한다고 핀잔을 자주 받곤 해요. 그러나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그저 몸과 마음으로 손자녀들을 사랑한다는 뜻을 표할 뿐이죠. 이제 아이들이 좀 더 커지면 내가 평생 공부한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어요. 마침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손자(김도윤·대도초등학교)가 역사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읽었고 세계역사 책과 <삼국지>도 다 읽어서 나보다도 아는 게 더 많아요. 지금 마음 같아서는 훌륭한 역사학자가 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더 두고 봐야겠지요.”

금쪽같은 손자녀를 보며 걱정과 염려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손자녀 대에는 우리나라가 더 안전해지고 행복지수가 지금보다 더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걱정이에요. 우리 사회가 전보다 물질적으로는 많이 좋아졌지만 정신적인 면과 사회안전망 면에서 허점이 너무 많아요. 세금을 좀 더 내더라도 안정되고 편안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남북 문제도 어서 속히 풀리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억장이 무너지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었으면 합니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경동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사학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역사교육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한성대학교 총장

제9회 독립기념관 학술상 수상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현)한성대학교 인문대학 역사문화학부 명예교수

현)도산학회 회장

현)‘3·1혁명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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