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가 부인 김초혜 시인(71)의 신간 '행복이'
'사랑굿'으로 유명한 김초혜(71) 시인이 손자 재면 군에게 일기처럼 쓴 편지를 모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행복이'(시공미디어 펴냄).
시인이 2008년 1월 1일부터 같은 해 12월 31일까지 1년 365일 쓴 이 편지에는 손자에 대한 잔잔하면서도 따스한 내리사랑이 담겼다.
시인은 두꺼운 가죽노트 다섯 권에 적은 이 일기를 고이 간직하다 지난해 손자의 중학교 입학선물로 건넸다. 반평생 넘게 글을 써온 시인에게 자신의 글쓰기가 가장 요긴하게 여겨졌던 순간이었을 것처럼 365편의 러브레터를 읽는 손자도 행복했을 것 같다.
일기에는 시인이 "이 세상에 와서 사는 동안 읽으며 감명을 받았던 글"과 "세상을 사는 데 지혜를 주었던 말들"(4쪽)이 담겼다. 평생을 독서가로 살아온 그답게 시인이 고른 명언은 톨스토이, 로랭 롤랑, 셀리, 칼릴 지브란, 한유 등 문학사적 대가를 아우른다.
시인은 손자에게 책을 가까이하라고 일러주고, 건강에 유의하라고 당부하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 갓 중학생이 된 손자에게 건네는 조언이라지만 일부 대목은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이 할머니이기 이전에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그리고 사회와 세상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시대의 어른으로서 손자에게 오랫동안 새겨들을 만한 조언을 건네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억울함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말아라. 네 입으로 말하면 해결되는 건 없이 너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다. 남이 먼저 알고 그 얘기를 꺼냈다 해도 지난 일이라고. 다 잊어버렸다고 대범한 모습을 보이거라. 그것이 억울함을 이기는 길이다."(150쪽)
"이 세상에는 물질적으로는 부자지만, 정신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나폴레옹은 '부는 곧 물질'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했다.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은 '위대한 마음'이라고 일깨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자들은 그런 말에 코웃음치며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갖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죽을 때는 동전 한 닢 못 가져간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은 모양이다. 이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에 나폴레옹의 말이 새로운 것이 당연하면서도, 마음이 언짢구나."(335쪽)
책에는 시인의 남편이자 재면 군의 할아버지인 소설가 조정래에 관한 대목도 드러나 눈길을 끈다. "할아버지는 옳지 않은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 훌륭한 분이시란다. 엄격한 아버지가 어려워서 아버지를 슬슬 피하는 네 아빠를 할머니는 늘 불행하게 생각했다."(36쪽)
"네 할아버지는 계획한 대로 변함없이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 너도 할아버지처럼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훌륭한 인생경영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할아버지는 인생이라는 외길의 레일 위를 걸으며 한 번도 떨어진 일이 없었단다."(228쪽)
이 책이 특별한 것은 하루하루 365편의 편지를 빼먹지 않고 써낸 그 정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