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으로 얻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고미랑 씨

평생 해온 육아 경험을 사회적 가치로 살릴 방법은 없을까.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양성 과정에 중장년 여성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가족도 자격을 갖추면 정부지원금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손주를 돌보며 일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일과 돌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더니 기쁨은 배가 됐다.
‘첫 번째 선생님’이라는 자부심
“아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만나는 첫 번째 선생님이 바로 저예요.” 신생아의 작고 따뜻한 손을 매만지는 순간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1965년생 고미랑 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 씨는 2018년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자격 과정을 수료했다. 어린이집 원장으로 0~3세 아이들을 돌본 경력은 자그마치 30여 년. 저출생 여파로 원아가 줄어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그립던 차에 찾은 일자리다. 그는 한국여성교육개발원에서 진행한 ‘산전산후보육사’ 자격증도 추가로 취득했다.
“엄연한 전문직이에요. 육아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니까 공부도 계속해야 하죠.” 그의 말투엔 깊은 자긍심이 배어 있었다.
반년 전 그에게 특별한 손님이 생겼다. 딸이 출산하며 그의 돌봄 대상이 된 것. 5개월간 그는 손주의 밤샘 수유와 딸의 산후조리를 도맡았다. 올해부터는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도 자격과 절차를 갖추면 정부지원금을 활용해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자식을 키웠어도 워낙 오래전 일이니 아기 보는 법을 다 잊었을 수도 있잖아요. 손주를 기다리면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자격 과정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내 피붙이가 더 예쁜 건 사실이지만, 일하다보면 정이 들어서 돌보는 다른 아기들도 다 내 손주 같아요.”
인터뷰하는 날 생후 6개월 된 손주 양선우 군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선우가 이유식을 입가에 묻히자, 고 씨는 “아이고, 당근팩 했네”라며 웃었다. 아이는 천진하게 웃었고, 그 웃음을 보는 그의 눈빛은 환했다. 그의 모습은 단순히 ‘일하는 할머니’가 아니라, 가족의 사랑과 직업적 소명 의식이 공존하는 시니어의 상징처럼 보였다.

타지에서 온 산모들의 ‘수양엄마’
그가 일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동탄신도시는 젊은 맞벌이 부부와 이주민이 많다.
“이 동네 산모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분들이에요.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가 없죠. 그러니 출산과 육아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선생님, 제가 수양딸 할래요’라며 먼저 다가오는 산모들이 많아요.”
고 씨는 그런 산모들에게 진심으로 대한다. 방문 가정의 사정을 훤히 아는 만큼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더 머물기도 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늦은 시간에도 연락을 받는다.
“아기 엄마들도 딸 또래라 그런지 다 내 자식 같아요. 산후조리 기간은 산모의 몸과 마음이 가장 약할 때거든요. 이때만 잘 도와주면 금방 건강을 회복하고 멋지게 육아도 할 수 있죠.”
산모의 회복을 돕고, 초보 부모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엄마들이 처음엔 다 불안해해요. 우울증이 오는 사람도 많고요. 그럴 땐 제가 아이 아빠에게 꼭 얘기해요. ‘답은 남편이에요. 지금은 무조건 아내를 도와줘야 해요.’ 그렇게 부부가 서로를 돌보면 곧 좋아져요.”
그의 돌봄을 받은 한 산모는 이렇게 회상했다. “관리사 선생님이 저보다 제 아이를 더 사랑하셨을 거예요. 항상 ‘축복한다, 멋지고 예쁘다, 소중한 사랑아, 먼 미래에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이 되어 행복하라’고 빌어주시니까요.”
고 씨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요즘 같은 때 아기가 얼마나 귀해요? 아기들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얘네는 사랑을 알거든요. ‘사랑해’라고 말하면 애가 웃어요. 그거 보면 이 일이 내 천직이구나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따뜻하면 우리 나이에도 할 일은 많아요. 나이 들어서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손주만 돌보지 말고, 나 자신도 돌봐야 해요. 그게 일의 힘이에요.”
▲고미랑 씨가 취득한 자격증.(윤나래 기자)직업으로서의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가 되려면 해당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기관에 등록해 신규자 60시간, 경력자 40시간의 이론·실습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경력자는 최근 3년 내 유사 돌봄 500시간 이상, 또는 요양보호사·간호조무사 등 관련 자격 보유자를 말하며, 수료 후 100일(800시간) 이상 근무 시 교육비는 전액 환급된다.
근무 형태는 출퇴근형과 입주형이 있으며, 주말이나 공휴일 근무, 큰아이 돌봄 등이 포함되면 추가금이 붙는다.
출산 가정은 출산 예정일 40일 전부터 60일 이내(지자체별 최대 90일)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며, 소득 기준은 기준중위소득 150% 이하가 원칙이다. 신청은 산모 또는 신생아 주소지 보건소에서 하면 된다.
지역 맘카페에서 입소문이 난 관리사는 출산 전부터 예약이 몰린다. 고 씨 역시 내년 5월까지 일정이 꽉 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