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청년세대의 노인 존중에 대한 반감, 이해와 참여로 해결해야”

입력 2025-08-22 10:16수정 2025-08-22 10:16

연령주의 종식 활동 중인 前 WHO 컨설턴트,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

▲前 세계보건기구(WHO) 연령주의 종식 캠페인 컨설턴트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이준호 기자)
▲前 세계보건기구(WHO) 연령주의 종식 캠페인 컨설턴트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이준호 기자)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는 호주의 반 연령주의 캠페인 에브리 에이지 카운츠(EveryAGE Counts, ‘모든 연령이 중요하다’)의 이사이자 세계보건기구(WHO) 연령주의 종식 캠페인 컨설턴트로 활약한 인물이다. 20일 개최된 ‘제5차 아셈 노인인권 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연령주의(ageism)를 “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를 잠식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규정하며, 연령 차별 철폐를 위한 교육·제도·문화 전반을 바꾸는 장기 전략을 촉구했다.


그는 먼저 연령주의의 정의부터 바로잡았다. 1969년 로버트 N. 버틀러가 제시한 연령주의는, 노인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고정관념을 넘어 사회가 젊음을 기준으로 정책·환경·제도를 짜면서 노년층의 필요와 기여를 체계적으로 소외시키는 경향까지 뜻한다. 개인의 말과 행동에서만 드러나는 편견이 아니라 고용, 도시 설계, 의료, 금융, 공공정책 등 생활 전반에 스며드는 구조적 편견이라는 설명이다.

정년은 연장이 아닌 폐지가 우선되야

현재 우리 사회는 고령화를 맞아 정년 연장을 준비 중이다. 좀 더 오래 일할 기회를 제공해 길어진 노년을 대비토록 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연령주의를 반대하는 이들은 정년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그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노화와 생산성 저하는 직결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강제 정년은 소득 상실을 넘어 목적의식과 의미, 가치를 빼앗고 기업은 숙련과 지혜라는 자산을 잃는다. 한국이 정년 연장과 연령주의 해소를 함께 달성하려면 대중과 일터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정보 캠페인, 차별의 영향과 구제수단에 대한 사회적 이해 확산, 그리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 설계하고 집행하는 통합 전략이 동시에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주는 정년 제도가 철폐되었습니다. 60세를 노쇠로 전제하던 과거의 잣대는 오늘의 기대수명과 건강수준, 교육과 기술 역량의 격차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와 함께 기업을 향해 고령자에 고용에 대한 사고방식 전환을 촉구했다.

“선입견을 깨야 합니다. 나이 든 근로자는 보험 위험이 높다, 생산성이 낮다, 기술을 못 배운다는 통념은이미 사실이 아님이 통계와 연구로 증명되었는데, 아직도 고령 노동자를 평가절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의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전략에 연령을 포함하고, 기업 내에서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현실에 맞춰 협업·지식공유·유연근무를 표준화해야 합니다. 단계적 은퇴, 시간·직무 조정 등 유연성 중심의 제도를 정착시키고, 인체공학 장비나 근무시간 탄력 같은 합리적 조정을 낙인이나 불이익 없이 요청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와 함께 시니어 당사자를 정책·프로그램 설계에 직접 참여시키라며 사내 시니어 네트워크 등 채널을 통해 현장의 요구를 상시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연령주의의 영향은 일터 밖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예방검진 배제, 증상 무시, 임상시험 제외 같은 의료 관행, 보험·대출에서의 가격 차별, 디지털 접근성 장벽을 열거하며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중과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각 부문별 점검과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령차별 해소의 첫 단추는 ‘교육’

크라소비츠키 박사는 교육을 연령주의 타파를 위한 ‘첫 단추’로 꼽았다. 그는 “사람들은 나이를 떠올릴 때 죽음, 쇠퇴, 의존이라는 이른바 ‘3D(death, decline, dependence)’를 자동 연상한다”며, “바꿀 수 없는 노화의 면이 있다면 그 부정적 영향을 줄이도록 사회적 설계를 바꾸면 된다”고 설명했다.

개념을 교과서에 가두지 말고 실생활 속 문제로 풀어낼 것도 주문했다. 신체적 질환을 “늙어서 그런 것”이라며 검진과 상담을 포기하는 자기주도적 연령주의, 농담과 무시, 배제로 드러나는 대인관계적 연령주의, 나이를 이유로 채용과 승진, 의료·금융 접근을 제한하는 제도적 연령주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시민이 공감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호주에선 생일을 맞는 사람에게 축하 카드를 써서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카드 겉면에 나이 듦을 비하하는 지독한 농담이 쓰여있는 경우가 많아요.”

생일카드의 연령주의적 농담을 문제 삼으면 돌아온 말은 늘 비슷했다고. “농담도 못 받아들이냐”라는 식이었다. 그는 이를 “사소해 보여도 존엄을 깎는 일상적 차별”이라고 규정했다.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는 연령차별 해소를 위한 언어와 프레임을 바꾸는 작업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비하와 낙인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을 걷어내고,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개인의 다양성은 오히려 커집니다. 고령화를 ‘인구 쓰나미’ 같은 공포의 문제로만 그릴 것이 아니라 역량과 기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의 프레임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연령주의와 싸운다는 전투적 표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모든 연령을 위한 세상’이라는 긍정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겁니다.”

그가 2018년부터 참여해 온 캠페인 에브리 에이지 카운츠가 제안해 온 인권과 다양성, 역량 강화와 지원, 가치, 교육, 세대 간 교류의 관점은 노인을 동질적이고 무력한 집단, 사회의 부담으로 보는 낡은 상상을 깨는 데 유용한 대안의 틀이 됐다.

같은 메시지라도 문화적 맥락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독립성과 자율을 중시하는 곳과 존중과 공경의 어휘가 중요한 문맥에서 효과적인 언어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생애주기 관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연령주의는 당장의 노인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청년도 미래의 노인이 된다”고 말하고, “지금 우리가 택하는 언어와 제도는 미래의 자아상과 사회적 가능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 연령 포용은 특정 집단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나이의 제약 없이 삶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장기 투자라는 정의가 여기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前 세계보건기구(WHO) 연령주의 종식 캠페인 컨설턴트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이준호 기자)
▲前 세계보건기구(WHO) 연령주의 종식 캠페인 컨설턴트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이준호 기자)

청년세대의 반감 함부로 다뤄선 안돼

캠페인 과정에선 당연히 반발과 저항이 있었다. 연령주의는 워낙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자리잡아 있었기 때문. 초창기에는 개념 자체가 낯설어서, 연령주의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보다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역차별 주장과 반발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최근 2030 남성을 중심으로 한 청년 세대의 반 사회적 차별 운동에 대한 반감은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그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그들을 동참시킬 것을 주문했다.

“메시지와 전략 설계 단계부터 청년을 당사자로 참여시키고, 그들이 느끼는 문화적 맥락과 불공평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청년이 스스로 효과적인 해결책·메시지·전략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접근은 페미니스트·장애인 인권 운동에서도 효과가 검증된 부분입니다. 또 WHO가 권고해온 축 가운데 하나인 세대 간 교류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경험을 나누며, 기후위기·세대 융합과 같은 공동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실천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국제 협력의 필요성도 분명히 밝혔다. “연령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나라는 없습니다. 출발점은 인식 제고입니다.” 유엔 노인인권 협약 제정은 연령주의에 대한 “명확한 부정”이자 각국 정책을 이끄는 국제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과 호주가 초안 논의에 참여하고, 연령친화 일자리 모델, 세대 갈등 완화, 노인 기여도의 가시화에서 협력을 넓힐 여지가 크다고도 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우리 사회를 향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는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다”고 강조하고, “단기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교육, 제도 개선, 세대 간 연결, 대상을 세밀화 한 캠페인, 데이터 기반 평가를 기반으로 한 정책 개선 등 장기적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말린느 크라소비츠키 박사가 참석을 위해 방한한 행사는 지난 20일 진행된 ‘제5차 아셈 노인인권: 현실과 대안’ 포럼이다. 이 포럼은 국제 노인인권 전문기구인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ASEM Global Ageing Center(AGAC), 원장 이혜경)와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윈회(위원장 안창호), 주한유럽연합대표부(대사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이 공동으로 ‘연령주의를 조명하다: 문화적 현실, 구조적 장벽, 그리고 변화의 길’을 주제로 개최됐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뉴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뉴스

  • 박승흡 한반도메밀순례단장 “무미의 미를 찾아서”
  • 유튜버 손자투어 “할머니와 9년째 여행 중”
  • ‘엄빠, 걱정 말아요’…할머니·할아버지와 떠나는 여행
  • 우리의 여행은 당신의 여행과 다르다

브라보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