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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라, 그래야 오늘을 산다

입력 2026-07-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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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만난 400년 전의 메시지

▲안토니오 드 페레다, ‘바니타스의 알레고리’,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안토니오 드 페레다, ‘바니타스의 알레고리’,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작년 초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사박물관 전시실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탐스러운 과일과 값비싼 보석이 화면 가득 넘쳐나는데, 구석에 해골 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였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몇 년 전 대한웰다잉협회에서 발표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낯선 도시에서 반가운 사람을 불쑥 마주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오래된 관심사를 다시 만난 순간,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부와 죽음을 한 화면에 담다

바니타스란 라틴어로 ‘공허함’, ‘헛됨’을 뜻한다. 성경 전도서의 그 유명한 구절,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 계층이 등장한 시대였다. 이들은 귀족처럼 집에 그림을 걸어 성공과 고상한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칼뱅의 금욕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노골적인 부의 과시는 경계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화가들이 찾아낸 절묘한 해법이 바로 바니타스 정물화였다.

한쪽엔 화려한 왕관, 진귀한 보물, 값비싼 로브스터, 금화, 만개한 꽃이 놓여 있다. 다른 한쪽엔 해골, 모래시계, 꺼져가는 촛불, 썩은 과일, 시든 꽃이 자리한다. 풍요를 누리면서도 삶의 덧없음을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도덕적 면죄부이자 철학적 장치였다. “우리는 이렇게 풍요롭게 살지만, 삶이 덧없다는 것도 압니다.”

오늘날 SNS에 올리는 화려한 일상 사진과 얼핏 닮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SNS가 대체로 삶의 빛나는 순간만 전시한다면, 바니타스 정물화는 그 빛 옆에 반드시 그림자를 함께 넣었다. 화려함 속에 죽음을, 풍요 속에 소멸을, 현재의 행복 속에 언젠가 다가올 끝을 담아냈다.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

이 그림들에 담긴 메시지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로 압축된다. 사람들은 거실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매일 자신의 유한함을 되새기고, 남은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400년 전 네덜란드 중산층이 선택한 이 생활철학이 오늘날 더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2025년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섰고, 베이비붐 세대 1700만 명이 본격적인 노년기에 들어서고 있다. 기대수명은 늘어났지만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다. 수명 연장과 노후 불안이 공존하는 시대다.

이제 죽음은 삶의 마지막에 잠시 마주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어떻게 삶을 정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는 곧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삶과 죽음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교차하는 지금,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화두가 됐다.


웰다잉은 잘 죽는 준비가 아니다

흔히 웰다잉을 ‘편안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은 반쪽짜리 정의다. 죽음을 제대로 직면할 때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가 또렷해진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가 선명해진다. 웰다잉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연결된 질문이다.

화가들이 캔버스에 해골을 그린 것은 포기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인생이 유한하고 덧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역설이다.

우리는 흔히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붙잡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을 붙잡기 위해서는 먼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오늘이 선명해진다. 웰다잉이 삶의 기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살아 있음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 순간

이 여행을 떠나기 전, 머리에 동전만 한 점이 발견돼 조직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 훌쩍 떠난 여행이었다.

그 미술관에서 삶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말하는 그림들 앞에 섰을 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꼈다. 해골 곁에 꽃을 그린 400년 전 화가들의 메시지인 ‘죽음을 기억하라’는 지금도 유효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금(金)이 무엇인지 아는가? 황금, 소금, 그리고 지금이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지금’이라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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