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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도 멋질 수 있죠”… 시니어 시장 길잡이 꿈꿔

입력 2026-07-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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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노인 관찰하던 건축학도 시니어 산업 콘텐츠 CEO로…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

노인용 욕조 창업 실패도 겪어

노년 아젠다 생성 중심이 목표

기술로는 노인 자존감 못 채워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이준호 기자)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이준호 기자)

“어르신들이 왜 이 장소에 나와 계신 것 같나요?”

2017년 건축학도였던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는 수업 중 지도교수가 던진 질문에 시선이 멈췄다. 그날부터 동네 골목과 건물 앞에 앉아 있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어르신들은 계속 그곳에 계셨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수업을 듣고 나니 갑자기 어르신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궁금증은 연구로 이어졌다. 최 대표는 대학원에서 한국 노인의 일상과 ‘제3의 장소’를 연구했다. 제3의 장소는 집이나 직장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애착을 갖고 찾아가 머무는 생활 속 공간을 이야기한다.

연구를 위해 그는 약 2년간 현장을 다니며 노인들에게 “왜 이곳에 나오셨느냐”고 물었다. 어떤 이는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한 장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들은 집에서 가까우면서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해 머무르고 있었다.

건축학도로 시작한 최 대표가 시니어 산업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때 만들어졌다. 공간과 제품의 기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관계를 맺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시니어 비즈니스 콘텐츠 플랫폼 분야 도전

현재 그는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 국내외 시니어 비즈니스 사례를 분석하는 콘텐츠 플랫폼 롱라이프랩을 운영 중이다. 건축을 전공한 30대 여성 CEO라는 이력은 최 대표를 시니어 산업 분야에서 더욱 눈에 띄게 한다. 사회복지나 노인복지를 바탕으로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가 많은 업계에서, 젊은 건축학도의 시선으로 고령사회의 일상과 제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력은 노인복지나 돌봄 중심으로 설명돼온 고령사회와 산업을 생활과 소비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한다.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방향을 튼 계기는 답답함이었다. 고령사회에 관한 연구는 계속 쌓였지만 현실의 변화는 더디다고 느꼈다. 직접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선택한 것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개폐식 욕조 ‘워크인 배스’였다.

제조 경험이 없던 그는 중국 공장을 찾아가 국내 주택에 맞는 크기와 부품을 조율하고 샘플을 들여왔다. 국내 제도에 맞춰 기술적 인증과 디자인 특허도 받았다. 그러나 판매 실적은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물건만 있으면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죠. 하지만 현실은 제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어요.(웃음) 소비자들도 자녀나 손주, 손님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며 심리적 거부감을 나타냈고요.”

욕조는 제품 하나로 완성되는 사업이 아니었다. 설치를 위한 인테리어 공사와 전기 작업, 사후관리, 영업 조직까지 필요했다. 이 경험은 좋은 기능만으로 시장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제품이 실제 생활에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서비스 체계를 함께 설계해야 했다. 최 대표는 이후 해외 소비재를 들여와 판매하는 사업을 병행하며 소싱과 유통, 브랜딩을 익혔다. 시니어 산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적어도 10년은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욕조를 만들 때는 제가 뭔가를 아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 물건을 팔아보니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 시장은 정말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이준호 기자)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이준호 기자)

“노인의 장보기, 유일한 외출일 수 있어”

그가 제품과 서비스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을 대신해주는가’라는 기능적 요소가 아니다. 그 행동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중요시 여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보기다. 이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위해 배송이나 드론으로 장보기를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효율만 생각하면 외출과 활동, 사회적 접촉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어르신이 하루에 한 번 장을 보러 나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일 수 있어요. 그 외출이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드론이나 새벽배송이 다 해주면 된다고만 볼 수는 없어요.”

시니어 시장을 연령만으로 구분하는 방식에도 신중하다. 같은 50대와 60대 안에서도 건강과 소득, 취향과 생활방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최 대표가 중장년 당사자를 계속 만나고 관찰하려는 이유다. 시니어 산업에서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모가 사용하는 제품을 중년 자녀가 구매하는 경우, 기업은 양쪽의 요구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세대는 50대다.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고령의 부모를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연령층이다. 좋은 정보가 전달되면 부모에게 권할 수도 있고, 본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롱라이프랩 역시 정보에 대한 수요를 확인하는 데서 출발했다. 지난해 5월 뉴스레터를 시작하며 연말까지 구독자 100명을 목표로 잡았지만, 한 달여 만에 500명을 넘어섰다. 현재는 약 2000명으로 늘었다. 일부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하자 실제 매출도 발생했다. 시니어 업계 종사자들이 롱라이프랩을 찾기 시작한 것. 시니어 산업 분야 정보에 대한 목마름은 분명히 있었다.

최 대표는 아직 사람들이 무엇을 원해 비용을 지불하는지 확인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중장년 인터뷰와 소비자 조사를 통해 자체 데이터를 축적하고, 콘텐츠와 제품 개발을 연결할 계획이다. 일본의 중장년 여성 미디어 기업 하루메쿠처럼 나이 듦을 세련되게 이야기하면서 독자의 삶을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모델도 참고하고 있다.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이준호 기자)
▲최연희 롱라이프랩 대표.(이준호 기자)

상실과 불편의 나이 듦 ‘새로운 생활의 단계’로

최 대표는 국내 시니어 산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관련 정보와 연구를 모아 시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심축은 아직 부족하다고 봤다. 기업과 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현장의 경험과 소비자 의견, 국내외 사례를 연결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가공하는 기능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초고령사회와 시니어 시장에서 아젠다를 만드는 중심축이 너무 없다고 생각해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죠. 아직은 혼자 운영하고 있어 한계가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게 알리고 시장에 진정성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도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대표가 노년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고령자를 많이 만났다고 해서 그들의 삶을 모두 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자신이 나이가 든 뒤에도 개인의 경험만으로 중장년과 노인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 대표는 당사자를 계속 만나고 관찰하는 한편, 나이 듦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꿔온 국내외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일본의 중장년 여성 미디어 기업 하루메쿠를 참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다고 해서 그분들을 다 이해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요. 다만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연습, 이해하려는 노력은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나이가 들더라도 제 경험만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하지 않고 계속 만나고 대화해야겠죠. 하루메쿠를 보면서 좋았던 것도 나이 듦을 굉장히 세련되게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어요. 사람들이 나이 드는 일을 덜 외롭게 느끼게 하고, 중장년의 이야기를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와 제품으로 연결했어요. 저도 그런 방식으로 나이 듦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씩 바꾸고 싶어요.”

그가 롱라이프랩을 통해 바꾸고 싶은 것은 결국 나이 듦의 이미지다. 늙는 일을 불편과 상실로만 설명하는 대신,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뒷받침된 새로운 생활의 단계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골목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서 출발한 그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이 드는 것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오히려 멋지고 쿨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한국에도 멋진 어른들이 꽤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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